독일의 분단과 통일

독일의 분단과 통일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

1945년 포츠담협정을 통해 독일 동쪽국경은 오데르-나이세강(Oder-Neisse River)으로 확정되고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전승 4개국의 분할통치가 결정되었다. 독일은 동쪽영토가 대거 축소되어 폴란드에서 670만 명 그리고 체코에서 300만 명 등 동유럽 일대에서 총 1,400만 명의 독일인들이 서독지역으로 밀려들어왔다. 서독지역에서는 1946~48년 식량과 석탄생산은 전쟁전의 60~70% 그리고 산업생산은 50% 수준으로 감소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동독지역 역시 소련이 국민총생산(GNP)의 23%에 달하는 물자와 시설을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징발하여 전후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었다. 미국은 서독을 포함해 서유럽의 경제적 어려움은 공산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1947년 서유럽 16개국의 경제복구를 위한 마셜 플랜을 실행하였다. 마샬 플랜을 통한 경제적 지원으로 독일은 신속하게 전후복구가 이루어졌다.

미국·영국·프랑스가 관리하는 서독지역은 1949년 5월 기본법 초안이 작성되고 9월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되어 초대총리로 콘라트 아데나워가 취임하였다. 서독은 1955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그리고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여 유럽의 일원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서독은 국내에서 정치적 안정과 유럽통합의 경제적 수혜를 통해 1950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경제기적(Wirtschaftswunder)’으로 불릴 정도로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1961년 8월 동독은 일방적으로 베를린장벽을 구축하여 동서독간 대립은 극에 달하였다. 이후 1969년 사민당 출신으로 최초로 총리에 오른 빌리 브란트는 동서독간 긴장완화와 협력을 담은 동방정책(Ostpolitik)을 실시하고, 1973년 동서독이 함께 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다.

독일의 통일

1989년 여름부터 동독에서는 '평화적 혁명(Die Wende)'이 진행되어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는 더 이상 정부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사퇴하였다. 이후 동독 지역에서는 1990년 3월 최초로 다당제 자유선거를 실행해 신정부를 구성하고 서독과의 통합 현상을 진행해 같은 해 8월 통일 조약에 조인하였다.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통일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 4개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의 승인과 폴란드 등 주변 국가의 우려를 일소하는데 주력하였다. 콜 총리는 통일 이후에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정된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을 고수하고, 독일의 NATO 잔류를 천명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 9월 모스크바에서 동서독과 전승 4개국간 '2+4조약'이 체결되고 다음 달 통일독일이 출범하였다.

역사학자들은 본 공화국(the Bonn Republic)이 베를린 공화국(Berlin Republic)으로 변경되었다고 할 정도로, 독일의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1990년 10월 동독이 해체되고, 브란덴부르크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작센주·작센안할트주·튀링겐주 등 동독 지역의 5개주(州)가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1990년 12월 통일 이후 최초의 연방선거가 실시되어 콜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 Christian Democratic Union)이 승리하였다. 이에 앞서 1990년 10월에는 베를린이 수도로 결정되었으나, 행정수도 기반구축에 시간이 소요되어 1999년까지 본이 비공식적으로 수도 기능을 하였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1990년 5월 동서독간 통화·경제·사회적 연합협정(Treaty Agreeing on Monetary, Economic and Social Union)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 마르크화가 동독지역의 공식화폐가 되었고, 동독의 재정정책 권한은 서독으로 이관되고 양측간 경제와 시장이 통합되었다. 당시 동독지역은 이탈리아 남부 수준으로 사회·경제적으로 개발이 지체된 곳이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동독지역의 산업구조 개편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20여 년간 약 2조 4,000억 달러를 지출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1990년 서독에 35% 수준에 불과하였던 동독지역의 임금은 1995년 74% 수준으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통합으로 경쟁력을 잃은 동독의 많은 국영기업들이 문을 닫아 서독지역보다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었다. 2005년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은 총리 취임직후 통일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동서지역간에는 여전히 경제적 격차는 물론이고 정치적 신념과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