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플라톤

[ Plato ]

요약 고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30여 편에 달하는 대화록을 남겼는데 그 안에 담긴 이데아론(형이상학), 국가론 등은 고대 서양 철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플라톤

플라톤

원어명 Platon
출생-사망 BC 428/427 ~ BC 348/347
국적 그리스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고대 그리스 아테네
주요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향연》 《국가론》

생애

기원전 427년경 아테네의 유력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대 사료들은 그의 아버지 아리스톤(Ariston)을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코드로스(Codros)의 자손으로, 어머니 페리크티오네(Perictione)를 그리스 7현인 가운데 하나인 솔론(Solon)의 후손으로 적고 있다. 어린 시절 유명 문학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레슬링 선수 아리스톤에게 몸을 단련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스무 살 무렵 소크라테스의 문하로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 스승의 사상에 매료된 후 플라톤은 문학보다는 철학에 매진하게 되었다.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 사상은 당시 그리스 정치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아테네 내부에서는 민주주의 세력과 귀족주의 정파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 민주주의 정권은 소크라테스를 귀족주의의 본보기로 처형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적인 시각은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극대화되었다. 플라톤은 철인(哲人)의 국가통치 이론을 내세웠으며 시민 가운데 통치자 계급을 따로 두어 정치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 처형으로 큰 상실감을 겪은 플라톤은 다른 제자들처럼 아테네를 떠났다. 그는 메가라(Megara),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종파를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사상을 접했다. 이 시기의 독특한 경험은 그의 사상과 저작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마흔 살이 지나 고향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Acadēmeia)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사후 플라톤 아카데미라고 불린 이 학교는 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기원전 366년과 361년경 플라톤은 '이상국가'라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 시칠리아 시라쿠사로 갔으나,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2세(Dionysios II)는 플라톤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했으며 오히려 폭군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보수 세력들의 반발로 시라쿠사의 그리스인을 통합하는 일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시칠리아의 반역자 혐의를 벗고 간신히 고국으로 돌아온 플라톤은 80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세운 학교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는데 보냈다.

주요 저작과 철학사상

플라톤의 저작 대부분은 대화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30여 편이 넘는 대화편들이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진위를 의심받고 있다. 그의 주요 저작들은 연대와 사상적 흐름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① 《변론(소크라테스의 변명, Apologie)》, 《크리톤(Kriton)》,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고르기아스(Gorgias)》 등은 초창기 대화록들이다. 이 저작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정립하는 면이 강하며 윤리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변론》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에서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현혹했다는 소크라테스의 죄목들이 왜 타당하지 않는지를 다루고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 부에 앞서는 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크리톤》은 감옥에서 탈출하기를 거부하는 소크라테스와 그를 설득하려는 제자 크리톤의 논쟁을 통해 법의 준수 문제를 다룬다. 도주는 법에 위배되고 법에 위배되는 것은 선과 정의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에서는 소피스트와의 논쟁을 통해 덕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

② 《메논(Menon)》, 《파이돈(Paidon)》, 《파이드로스(Phaidros)》, 《국가》 등은 여행 이후 플라톤이 독자적인 사상을 완성해 나가던 시기에 작성된 문서들이다. 《메논》은 덕과 앎의 관계를 논하고 인식의 본질을 찾고자 한 작품이다. 전생의 기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등 피타고라스학파와 연관성을 보인다. 《파이돈》에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동료들과 나눈 대화이다. 영혼불멸을 논의하는 작품으로 ‘이데아론’이 드러난다. 《파이드로스》에서는 영혼을 능동적인 것으로 육체를 수동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육체와 분리된 귀중한 영혼들은 이데아의 세계인 천상에 도달한다. 반면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는 인간의 앎은 이데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국가》에는 본질과 그림자에 비유되는 이데아론과 그것이 반영된 정치철학이 담겨있다. 최선의 법이 적용되고 있는 이상국가의 시민은 관리자(통치자), 군인(수호자), 서민(생업 종사자) 세 계급으로 나뉜다. 이상국가의 법은 덕과 앎에 기반을 둔 것이므로 관리자들은 앎을 통해 덕을 추구하는 사람, 즉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③ 《티마이오스(Timaios)》, 《폴리티코스(Politikos)》, 《법률》 등은 더 심오해진 노년기의 철학을 보여준다. 《티마이오스》에서는 우주와 땅 위의 생명에 관한 자연철학적 논의가 전개된다. 인과법칙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기존 철학과 달리 이데아와 그 반영이라는 입장에서 자연을 바라본 것이 특징이다. 《폴리티코스》와 《법률》에서 그의 정치철학은 더욱 구체화되고 광범위해진다. 다양한 정치형태와 통치자들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교육, 기관, 국방, 국가윤리 등이 제시된다.

플라톤의 저작과 사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대 서양 철학의 정점이라 평가받는다. 첫째, 플라톤 사상에는 스승 소크라테스 사상 뿐 아니라 고대 자연철학, 엘레아학파, 피타고라스학파, 소피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정된 존재, 생성과 다원성, 윤회와 정화, 구원, 영원성, 영혼 등 모든 것들이 플라톤을 통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둘째, 플라톤 사상은 기존 그리스 전통을 뛰어 넘는 면모를 보인다. 그는 아테네 정치이론에 회의를 품었으며, 그리스 예술과 문학적 전통의 가치에 한계선을 그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탐구하는데 있어 고대 인도철학과 유사한 요소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셋째, 이데아론을 비롯한 플라톤의 철학은 중세 기독교 철학 및 근현대 사상체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시대 지배 논리인 세 위계 이론(성직자, 귀족, 제3신분), 세계를 신의 나라(이데아)와 인간의 세상(그림자)으로 나누는 신국론(神國論), 신플라톤주의가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