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

[ Neo-Platonism,Neoplatonism , 新─主義 ]

요약 플라톤 철학의 계승과 부활을 내세우며 3~6세기에 로마제국에서 성행했던 철학사상으로 신플라톤학파라고도 한다.
그리스철학 계통도

그리스철학 계통도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라는 용어는 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가 이전의 플라톤 사상과 구별하기 위해 처음 사용하였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특징

플라톤 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이데아(Idea)설에 기반한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플라톤은 감각으로 지각되는 물리적 세계는 제한적이지만 지성으로 파악되는 이데아의 세계는 영원·불변하다고 보았으며, 개개의 사물들은 완전한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模寫)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인식을 계승하여 더욱 세분화시켰다. 그들은 이데아계를 만물의 궁극적 근원인 ‘일자(一者, Hen)’와 지성인 ‘누스(nous)’, 영혼인 ‘프시케(psyche)’로 계층화하였다.

그들은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단계적으로 산출되고, 다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에 따르면 참된 실재이자 하나의 근원은 일자(一者, Hen)뿐이며, 일자의 ‘유출(流出, Eranatio)’로 만물이 산출된다. 일자에서 지성인 누스(nous)가 유출되고, 그 다음으로 영혼인 프시케(psyche)가 유출되며, 마지막으로 물질의 세계인 현상계가 유출된다. 각 단계는 그보다 상위 단계의 모사이기 때문에 가장 상위에 있는 일자 안에서는 모든 단계가 발견된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육체에 담겨 있는 이성과 영혼을 보존해야 한다. 이처럼 신플라톤주의는 '일자'와 '유출'이라는 개념으로 세계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설명하였으며,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연결시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정신과 영혼을 중시하는 매우 엄격한 금욕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죽음도 영혼이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플라톤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플라톤 학설을 중심으로 당시 소아시아와 이집트 등에서 전래된 종교 사상과 신비주의 철학들을 사변적으로 종합하려 했던 것이다. 2세기 로마제국에서는 동방에서 전래된 그노시스주의가 성행했는데, 이 학설은 물질과 영혼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고,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신에 대한 참된 인식과 합일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플라톤주의는 그노시스를 비롯한 신비주의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반대로 그것들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로티노스의 전기 신플라톤주의와 이암블리코스(Iamblichos, 245?~325?)와 프로클로스(Proclos, 410?~485) 등의 후기 신플라톤주의로 구분되는데, 후기 신플라톤주의는 플로티노스의 학설에 신비주의적 경향을 더욱 강조하여 비기독교적 신학을 추구했으며, 매우 정교한 형이상학적 사변을 발달시켰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갖는 의의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 고전철학의 마지막 형태로서 기독교 비판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만물이 궁극적 근원인 일자(一者)에 기초한다는 이론은 유일신 사상을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끼쳐 그리스 철학을 중세의 기독교 철학과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했다. 특히 초기 기독교 교리의 체계화에 큰 역할을 하였던 오리게네스(Origenes, 184?~253?)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년?~395?) 등은 모두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인물이다.

신플라톤주의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529년에 이교 철학자들을 탄압하면서 쇠퇴하였지만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와 영국 등을 중심으로 부흥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지원으로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 등이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워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계승하였다. 일자(一者)로서의 신(神)을 정점으로 여러 덕(德)과 존재들이 미(美)의 서열을 이루고 있다는 신플라톤주의의 미학(美學)은 르네상스의 문예와 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에서는 커드워스(Ralph Cudworth, 1617~1688) 등의 케임브리지 플라톤 학파를 중심으로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다시 성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