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누스
[ Nicolaus Cusanus ]
- 요약
독일의 추기경·수학자·철학자로 교회개혁과 교회일치를 위해 힘썼다. 1448년에 추기경, 1452년에는 티롤 지방 브릭센의 대주교가 되었다. 대립술의 일치를 신에게서 인식하는 데는 인식의 최고 단계인 직관(直觀)에 따른다고 하였다.
출생-사망 | 1401 ~ 1464.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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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니콜라우스 크레브스(Nicolaus Krebs) |
국적 | 독일 |
활동분야 | 종교, 철학 |
출생지 | 독일 모젤강변의 쿠에스 |
주요저서 | 《데독타이그노란티아 De docta ignorantia》(1440) 《신의 환상(幻像)에 관하여》(1453) |
본명 니콜라우스 크레브스(Nicolaus Krebs). 모젤강변의 쿠에스 출생. 쿠사누스는 쿠에스인(人)이라는 뜻. 1413년 네덜란드의 데펜터에 있는 ‘공동생활의 형제회’에서 교육을 받고, 1416년 이후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이탈리아의 파도바대학교, 쾰른대학교에서 법학 ·철학 ·수학 ·자연과학 등 광범하게 학문을 연구했다.
1430년에 귀국, 코블렌츠의 성 플로린 성당의 사제가 되었다. 바젤공의회(公議會)에 회의파로 참가했으나, 뒤에는 교황파가 되었다. 교회개혁과 교회일치를 위해 힘썼으며, 1448년에 추기경, 1452년에는 티롤 지방 브릭센의 대주교가 되었다. 만년에는 이탈리아를 여러 번 여행하였는데, 그 곳 토디에서 죽었다. 그의 사상은 스콜라학파의 전통과 신플라톤파의 사상을 이어받아, 신은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이고, 현상세계는 소산적(所産的) 자연(natura naturata)으로서 이 모순은 신에게 있어 반대의 일치를 이룬다고 하였다.
또한 그 대립술의 일치를 신에게서 인식하는 데는 인식의 최고 단계인 직관(直觀), 즉 ‘무지의 지(知)(docta ignorantia)’에 따른다고 하였다. 그의 사상은 근세철학, 특히 G.브루노, 라이프니츠에게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주저 《데독타이그노란티아 De docta ignorantia》(1440) 외에 《보편적 화합에 대하여》(1440) 《신의 환상(幻像)에 관하여》(145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