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

크라쿠프

[ Krakow ]

요약 폴란드 마우폴스키에(Małopolskie)주(州)의 주도(州都).
크라쿠프

크라쿠프

원어명 Kraków(폴)
위치 폴란드 마우폴스키에주(州)
경위도 동경19°56′18″ 북위50°3′41″
면적(㎢) 326.8
시간대 UTC+2 (CET)
행정구분 18개의 구역(Districts)
행정관청 소재지 크라쿠프 중앙광장(Centre of Main Square)
홈페이지 http://www.krakow.pl/
인구(명) 779,115(2019년)

폴란드의 과거 수도로 오랜 역사를 갖는 도시이다. 폴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로 2019년 기준 인구는 779,115명이며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면 1,725,894명으로 유럽에서는 규모가 큰 거대도시이다. 또한 크라쿠프의 반경 100㎞ 이내의 거주인구는 800만여 명에 달해 인구 규모 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다. 도시 면적은 326.8㎦이며 광역권을 포함하면 1,023.21㎢에 달한다. 크라쿠프는 지리적으로 폴란드에서 남쪽에 치우쳐 부다페스트와의 거리가 수도인 바르샤바와 유사하다.

크라쿠프의 공식명칭은 ‘왕가의 수도 크라쿠프(Royal Capital City of Kraków)’이며 1990년대까지 영문 명칭은 ‘Cracow’로 많이 불리기도 하였다. 지명은 서슬라브 부족인 레치션스(Lechitians)의 통치자이며 크라쿠프를 건설한 전설의 인물인 크라쿠스(Krakus)에서 유래한다. 일설에는 크라쿠프는 고대 폴란드어로 마을을 의미하는 ‘Krak’에서도 유래한다고도 하며 확정된 정설은 없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고 7세기에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10세기 무렵에는 중동 유럽의 교역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크라쿠프는 1596년까지 폴란드의 수도로 정치, 경제, 문화예술의 중심지였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구시가지는 197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제 2차 대전 이전까지 폴란드가 독립국을 유지하던 시절에 크라쿠프는 폴란드에서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제2차 대전 시 수도인 바르샤바는 도시의 약 85%가 파괴되었으나 크라쿠프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당시 히틀러는 크라쿠프만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해 공습을 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크라쿠프는 아름답고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간직한 도시이다. 한편으로 독일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점령한 중동유럽지역 관리를 위한 행정부(General Government)를 크라쿠프에 두어 도시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크라쿠프는 폴란드는 물론이고 유럽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한 도시이다. 시내 전역에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런 건물이 즐비하다. 이 중에서도 구시가지의 바벨언덕(Wawel Hill)에 위치한 바벨대성당(Wawel Cathedral)과 비스와강 옆에 지어진 왕궁(Royal Castle)은 크라쿠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성모승천교회(St. Mary's Basilica)와 성 피터와폴교회(Saints Peter and Paul Church)도 유서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이외에도 구시가지에는 중세시대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앙시장광장(Rynek Główny)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라투슈초바탑(Wieża Ratuszowa) 등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364년에 설립되어 중동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갖는 야기엘론스키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도 크라쿠프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20세기 중반까지 바르샤바와 함께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대규모로 거주하던 중동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그러나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시내의 유대인들을 게토지역으로 추방하고 이후 인근의 아우슈비츠(Auschwitz)와 프아쇼프(Płaszów) 수용소로 보내 대부분 사망하여 유대인 공동체는 완전히 소멸하였다. 이에 따라 구시가지 내 유대인 거주지였던 카지미에르즈(Kazimierz)에는 유대인의 역사를 말해주는 기념관과 여러 건축물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