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

이항

[ 李恒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궁마에 뛰어났다. 사서 중《대학》을 중시했고, 이기론에 대해서는 이와 기가 항상 일물(一物)이 됨을 강조했다. 문집《일재집》이 있다.
출생-사망 1499 ~ 1576
본관 성주(星州)
항지(恒之)
일재(一齋)
시호 문경(文敬)
주요저서 《일재집》

본관 성주(星州). 항지(恒之). 일재(一齋). 시호 문경(文敬). 아버지는 주부(主簿) 이자영(李自英)이며, 어머니는 전주 최씨이다. 젊어서 무예를 익혔으며, 특히 궁마(弓馬)에 뛰어났다. 28세 때 백부 이자견(李自堅)의 가르침을 받고 도봉산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박영(朴英)이 무과 출신으로 성리학을 연구하여 당대의 명유가 된 것을 존숭하여 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당대의 학자들인 기대승(奇大升) ·김인후(金麟厚) ·노수신(盧守愼) ·조식(曺植) 등과 교유하면서 조야의 명망을 얻었다.

1566년(명종 21) 남언경(南彦經) ·임훈(林薰) 등과 함께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 의영고령(義盈庫令) ·임천군수를 지냈으며, 선조 초에 경력(經歷) ·부정(副正) ·장령(掌令) 등을 제수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학문 경향은 반궁성의(反躬誠意)를 입덕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주경궁리(主敬窮理)를 수도(修道)의 방법으로 삼았다.

사서(四書) 중에는 《대학》을 중시했으며, 이기론(理氣論)에 대해서는 이와 기가 항상 일물(一物)이 된다는 것, 즉 태극과 음양이 일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명종조유일(明宗朝遺逸)>조에 행적이 소개되어 있는데, 송인수(宋麟壽)는 “실천하는 공부는 장횡거(張橫渠)보다 못할 게 없다”고 평가하였다. 철종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태인(泰仁)의 남고서원(南皐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는 《일재집》이 있다.

참조항목

일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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