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

박영

[ 朴英 ]

요약 조선 전기의 무신. 성종 때 겸사복(兼司僕),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중종 시에는 의주목사, 동부승지(同副承旨), 영남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문집 《송당집》이 있다.
출생-사망 1471 ~ 1540
본관 밀양
자실
송당
시호 문목
활동분야 무인활동
주요저서 《송당집》 《경험방》 《활인신방》 《백록동규해》

본관 밀양, 자 자실(子實), 호 송당(松堂), 시호 문목(文穆)이다. 이조참판 수종(壽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딸이다. 일찍이 궁마술(弓馬術)을 익혀 무예(武藝)에 뛰어났다. 1487년(성종 18) 이세필(李世弼)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1년 원수(元帥) 이극균(李克均)을 따라 건주위(建州衛)를 토벌하고, 이듬해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 이어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성종이 죽자 사직하고 평소 무인임을 자탄하고 문사가 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정붕(鄭鵬)·박경(朴耕) 등을 사우(師友)로 삼아 《대학(大學)》등 경전을 공부하여 문사로서의 자질을 닦았다.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나자 중앙의 부름을 사양하고 왜구를 막기 위해 조방장(助防將) 직함으로 창원에 부임하였다. 1514년 황간현감, 1516년 강계부사, 1518년 의주목사·동부승지(同副承旨)·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등을 역임하였다. 1519년 병조참판을 사양하고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게 되어 기묘사화를 모면하였고, 뒤에 영남좌절도사(嶺南左節度使)에 이르렀으나 곧 죽었다. 의술(醫術)에도 능하여 많은 사람을 치료하였다.

황간(黃澗)의 송계서원(松溪書院), 선산(善山)의 금오서원(金烏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 《송당집》, 저서 《경험방(經驗方)》 《활인신방(活人新方)》 《백록동규해(白鹿洞規解)》가 있다. 문하에서 이항,이황,박경,박운,김취성,신계성,박소 등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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