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

이시애

[ 李施愛 ]

요약 조선 전기의 무신. 북방민 회유정책으로 중용되었으나 세조가 북방민 등용을 억제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출생-사망 ? ~ 1467
출생지 길주

길주 출생. 지방의 호족으로 조선 초 북방민 회유정책으로 중용되어 1451년(문종 1) 호군(護軍)이 되고, 1458년(세조 4) 경흥진(慶興鎭) 병마절제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 ·판회령(判會寧)부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왕권을 확립한 세조가 차차 북방민 등용을 억제하고 지방관을 직접 중앙에서 파견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자 자신의 지위에 불안을 느끼고 반란을 꾀하였다.

1467년 모친상으로 휴직중인 기회를 이용, 북도의 민심을 선동하고 같은 해 12월 절도사 강효문(康孝文)을 살해한 뒤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는 강효문을 역모죄로 처형하였다고 허위보고하고 스스로 절도사를 사칭, 북도민의 환심을 사 차차 세력을 확보한 뒤 단천(端川) ·북청(北靑) ·홍원(洪原)을 공략하고 함흥(咸興)을 점거하였다.

조정에서는 구성군(龜城君) 준(浚)을 사도(四道)병마도통사로 삼고 조석문(曺錫文) ·허종(許琮) ·강순(康純) ·어유소(魚有沼) ·남이(南怡) 등을 대장으로 하여 3만의 관군을 출동시켜 투항을 종용하였으나 반란이 아님을 상계하고 항복에 불응, 북도민의 중용을 거듭 요구하였다.

관군의 공격을 받아 북청에서 두 차례 격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였다. 한편 왕의 유서(諭書)로 반란임을 알게 된 백성들이 협력하지 않고 조정에서 논상절목(論賞節目)이 반포되어 부하 장수들의 동요가 심하던 중, 조정에서 밀파된 허유례(許惟禮)의 계교로 부하인 이주(李珠) ·이운로(李雲露)에 의하여 체포되고 참형(斬刑)에 처하여 각도에 효시되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