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이수정

[ 李樹廷 ]

요약 최초의 성서를 한글로 번역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1885년 한문 성서를 한글로 옮긴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했다.
출생-사망 1842 ~ 1886
활동분야 종교
주요저서 《천도소원》 《한국천주교사》

1842년(헌종 8) 전라남도 곡성에서 이병규(李秉逵)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本貫)은 전주(全州)로 알려져 있으나,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李承薰)의 후손으로 평창(平昌)이 본관이라는 학설도 있다.

고종 때의 유력자인 민영익(閔泳翊)과 교분이 깊었으며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開化黨)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냈다. 1882년 임오군란 때에는 명성황후를 충주로 피신시킨 공으로 왕실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벼슬이 도승지(都承旨)에 이르렀다.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안종수(安宗洙)의 권유로 1882년 제물포조약의 체결 이후 박영효(朴泳孝)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그리고 박영효가 귀국한 뒤에도 일본에 머무르며 안종수가 소개해준 일본의 농학자 쓰다 센[律田仙]과 교류하며 그에게서 근대 농법과 법률 등을 배웠고, 그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1883년 4월 29일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 녹스(G. W. Knox)의 입회하에 도쿄[東京]의 로게쓰초[露月町] 교회에서 일본인 목사 야스카와 도오루[安川亭]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한국인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신교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876년 압록강 유역의 고려문(高麗門)에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소속의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에게 의주 출신의 이응찬(李應贊), 김진기(金鎭基), 이성하(李成夏), 백홍준(白鴻俊)이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어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은 사건은 아니다.

그리고 이수정은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 강의를 진행하며,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편, 일본 주재 미국성서공회 총무였던 루미스(Henry Loomis)를 도와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래서 한문 성서에 토를 달아 ≪현토한한신약전서(懸吐韓漢新約全書)≫를 간행했고, 1885년 한문 성서를 한글로 옮긴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新約馬可傳福音書諺解)≫를 요코하마[橫濱]에서 간행했다. 이 성서는 한문 옆에 한글을 병기하는 방식의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는데, 1885년 2월에 요코하마에서 6,000부가 인쇄되어 출판되었다. 그리고 1885년 4월 5일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에 의해 한국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수정은 1883년 12월 13일 미국에서 발간되는 선교잡지 에 한국으로의 선교를 호소하는 글을 기고하였고, 1884년 7월에는 김옥균(金玉均) 등을 통해서 선교사 맥클레이(R. S. Maclay)의 입국을 실현시키기도 했다. 또한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윤치호(尹致昊) 등 일본 유학생들에게 기독교를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수정은 한국 개신교의 수용과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에 귀국하였다가 1886년(고종 23) 수구파(守舊派)에게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저서로는 ≪천도소원(天道所願)≫, ≪한국천주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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