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직

이동직

[ 李東稷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다. 부교리로 있으면서 정조의 문체반정 시책에 적극 동조하여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문체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공격하였다.
출생-사망 1749 ~ ?
본관 전주(全州)
거경(巨卿)
활동분야 정치

본관 전주(全州). 거경(巨卿). 역사학자인 이종휘(李鍾徽)의 아들로, 태종의 아들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다. 1775년(영조 5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 ·저작(著作) ·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조의 총애를 받아 1783년(정조 7)에 초계문신(抄啓文臣) 20인 중에 1명으로 선발되었으며, 1784년부터는 홍문관에 들어갔다.

이후 노론의 핵심인물이었던 김종수(金鍾秀)를 탄핵하는 언론활동을 폈으며, 1792년에는 부교리(副校理)로 있으면서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시책에 적극 동조하여 박지원(朴趾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문체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공격하였다.

또한 남인의 핵심인물이었던 채제공(蔡濟恭) ·이가환(李家煥)의 학문에 대해서도 이단사설(異端邪說)을 존숭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가하였다. 1800년에 대사간에 올랐으며, 이후에 대사헌 ·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색으로는 소론에 속한다.

참조항목

초계문신

역참조항목

문체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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