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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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熱河日記 ]

요약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중국 기행문집(紀行文集).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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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기행문집
저자 박지원(朴趾源)
시대 조선시대
소장 규장각도서, 충남대학교 도서관(수택본)

1780년(정조 4) 연암 박지원은 종형인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淸)나라 건륭제(고종)의 칠순연(七旬宴)에 참석하는 사신의 일원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중국 연경(燕京)을 지나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장지인 열하(熱河)까지 기행한 기록을 담았는데 중국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중국의 문물제도를 목격하고 견문한 내용을 각 분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1780년 6월 24일 압록강 국경을 건너는데 부터 시작하여 요동(遼東) ·성경(盛京) ·산하이관[山海關]을 거쳐 베이징[北京]에 도착하고, 다시 열하로 가서, 8월 20일 다시 베이징에 돌아오기까지 약 2개월 동안 겪은 일을 날짜 순서에 따라 항목별로 적었다. 조선의 사신일행이 열하까지 가게된 이유는 연경에 도착해보니 청나라 황제는 열하에 가고 연경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까지 가게된 것이다.

연암이 남긴 《열하일기》는 당시 보수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신문물(新文物)을 망라한 서술, 그곳 실학사상의 소개로 수많은 조선시대 연경 기행문학의 정수(精髓)로 꼽힌다. 이 책은 당초부터 명확한 정본(正本)이나 판본(版本)도 없었고, 여러 전사본(轉寫本)이 유행되어 이본(異本)에 따라 그 편제(編制)의 이동이 심하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 ·습상(習尙) ·고거(攷據) ·토목 ·건축 ·선박 ·의학 ·인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문학 ·예술 ·고동(古董) ·지리 ·천문 ·병사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었는데, 경치나 풍물 등을 단순히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利用厚生) 면에 중점을 두어 수많은 《연행록(燕行錄)》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힌다.

열하일기 본문 이미지 1

충남대학교 도서관 소장 연암 수택본(手澤本) 26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 <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 <도강록(渡江錄)>:서문은 필자 미상이나, 풍습 및 관습이 치란(治亂)에 관계되고, 성곽 ·건물 ·경목(耕牧) ·도야(陶冶) 등 이용후생에 관계되는 일체의 방법을 거짓없이 기술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또 <도강록>은 압록강에서 랴오양[遼陽]까지 15일간(1780.6.24∼7.9)의 기행문으로 중국인이 이용후생적인 건설에 심취하고 있음을 서술하였다.

권2 <성경잡지(盛京雜識)>: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특히 <속재필담(粟齋筆譚)> <상루필담(商樓筆譚)> <고동록(古董錄)>은 흥미 있는 내용이다.

권3 <일신수필(馹汛隨筆)>: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하이관까지 9일간의 기록으로, 그 서문 중의 이용후생학에 대한 논술이 독특하다.

권4 <관내정사(關內程史)>:산하이관에서 연경까지 11일간의 기록으로, 여기 수록된 한문 고대소설 <호질(虎叱)>은 연암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의 하나이다.

권5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연경에서 열하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열하에 대하여 소상히 기록하였고, 그곳을 떠날 때의 아쉬운 심경을 그렸다.

권6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열하에 있는 태학(太學)에서 6일간 지낸 기록으로 당시 중국의 명망 있는 학자들과 더불어 나눈 한 ·중 두 나라 문물제도에 관한 논평 및 지동설(地動說) ·달세계 등에 관한 토론이다.

권7 <구외이문(口外異聞)>:구베이커우[古北口] 밖의 기문이담(奇聞異談)을 적은 것으로, 반양(盤羊)에서 천불사(千佛寺)에 이르는 60여 종의 이야기이다.

권8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열하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는 도중 6일간의 기록으로, 대개 교량 ·도로 ·방호(防湖) ·방하(防河) ·탁타(橐駝:庭園師) ·선제(船制) 등에 관한 논평이다.

권9 <금료소초(金蓼小鈔)>:주로 의술(醫術)에 관한 기록으로 《연암집(燕巖集)》에서는 이를 <보유(補遺)>라 한다.

권10 <옥갑야화(玉匣夜話)>:이본(異本)에 따라서는 <진덕재야화(進德齋夜話)>로 된 것도 있다. 여기 수록된 <허생전(許生傳)>은 연암 소설뿐만 아니라 한국 소설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권11 <황도기략(黃圖紀略)>:황성(皇城)의 구문(九門)에서 화조포(花鳥鋪)까지 38종의 문관(門館) ·전각(殿閣) ·도지(島池) ·점포(店鋪) ·기물(器物) 등에 관한 기록이다.

권12 <알성퇴술(謁聖退述)>:순천부학(順天府學)으로부터 조선관(朝鮮館)에 이르기까지 역람한 기록이다.

권13 <앙엽기(盎葉記)>: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20개의 명소(名所)를 두루 구경한 기록이다.

권14 <경개록(傾蓋錄)>:열하의 태학(太學)에서 6일간 머물며, 그곳 학자들과 응수한 기록이다.

권15 <황교문답(黃敎問答)>:황교와 서학자(西學者)의 지옥(地獄)에 관한 논평이다. 끝에는 세계의 이민종(異民種)을 열거하는 가운데 특히 몽골과 아라사 종족의 강맹(强猛)함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권16 <행재잡록(行在雜錄)>:청나라 황제의 행재소(行在所)에서의 자세한 견문록이다. 여기서 특히 청나라의 친선정책(親鮮政策)의 연유를 밝혔다.

권17 <반선시말(班禪始末)>:청 황제의 반선(班禪)에 대한 정책을 논하고, 또 황교(黃敎)와 불교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권18 <희본명목(戱本名目)>.

권19 <찰습륜포(札什倫布)>:찰습륜포란 티베트어(語)로 ‘대승(大僧)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열하에 있을 때의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권20 <망양록(忘羊錄)>:음악에 관하여 중국 학자들과 서로의 견해를 피력한 기록이다.

권21 <심세편(審勢編)>:당시 조선 사람의 오망(五妄)과 중국 사람의 삼난(三難)을 역설한 기록이다. 북학(北學)에 대한 예리한 이론을 펼쳤다.

권22 <곡정필담(鵠汀筆譚)>:중국 학자 윤가전(尹嘉銓)과 더불어 전날 태학(太學)에서 미진하였던 토론을 계속한 기록이다. 즉, <태학유관록> 중에서 미흡하였던 이야기인 월세계 ·지전(地轉) ·역법(曆法) ·천주(天主) 등에 대한 논술이다.

권23 <동란섭필(銅蘭涉筆)>:동란재(銅蘭齋)에 머물 때 쓴 수필이다. 주로 가사 ·향시(鄕試) ·서적 ·언해(諺解) ·양금(洋琴) 등에 대하여 쓴 것이다.

권24 <산장잡기(山莊雜記)>:열하산장에서의 여러 가지 견문기이다. 특히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상기(象記)> 등은 가장 비장하고 기괴하게 묘사되었다.

권25 <환희기(幻戱記)>:광피사표패루(光被四表牌樓) 아래서 중국 요술쟁이의 여러 가지 연기를 구경한 소감을 적은 이야기이다.

권26 <피서록(避暑錄)>:열하의 피서 산장에서 지낸 기록이다. 주로 조선과 중국 두 나라의 시문(詩文)에 대한 논평이다.

한편 연암의 후손에 의하여 최근 <양매시화(楊梅詩話)>가 새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양매서가(楊梅書街)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한시화(漢詩話)로서, 당시 옮겨 쓰려다가 우연히 누락된 것으로 짐작된다.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국판 286면 활자본으로,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6책 활자본으로, 1948년 김성칠(金聖七) 국역본이 정음사(正音社)에서 각각 나왔으며, 1956년 타이완[臺灣]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사본(寫本)을 영인(影印) 출판하였다. 또 최근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古典國譯叢書)》 18∼19책으로 간행된 26권 2책의 이가원(李家源) 국역본이 있다.

참조항목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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