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구
[ 尹用求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서화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 해서·행서·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으며, 죽란(竹蘭)도 잘 그렸다. 글씨에 《문간공한장석신도비(文簡公韓章錫神道碑)》(果川) 《선성군무생이공신도비(宣城君茂生李公神道碑)》, 그림에 《묵죽(墨竹)》 등이 있다.
출생-사망 | 1853 ~ 1939 |
---|---|
본관 | 해평 |
자 | 주빈 |
호 | 석촌·해관·장위산인 |
활동분야 | 정치, 예술 |
주요작품 | 《문간공한장석신도비》 《선성군무생이공신도비》 《묵죽》 |
본관 해평(海平). 자 주빈(周賓). 호 석촌(石村)·해관(海觀)·장위산인(獐位山人). 1871년(고종 8) 정시문과에 급제, 검열(檢閱)에 임명되었고, 예조·이조 판서를 지냈다. 법부·탁지부·내무 대신에 10여 차례 임명되나 모두 사절하고, 서울 근교 장위산(獐位山) 밑에 은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 해서·행서·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으며, 죽란(竹蘭)도 잘 그렸다.
국권피탈 뒤 일본정부가 남작을 수여하려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글씨에 《문간공한장석신도비(文簡公韓章錫神道碑)》(果川) 《선성군무생이공신도비(宣城君茂生李公神道碑)》, 그림에 《묵죽(墨竹)》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