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김진묵 송덕비 및 비각

보은 김진묵 송덕비 및 비각

[ 報恩 金振默 頌德碑 및 碑閣 ]

요약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월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석과 비각. 2003년 4월 11일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보은 김진묵 송덕비 및 비각

보은 김진묵 송덕비 및 비각

지정종목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2003년 4월 11일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월송리 480-2번지
시대 일제강점기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조선 말기의 인물 용계 (龍溪) 김진묵(金振默, 1859~?)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2003년 4월 11일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개국(開國) 539년 즉 1930년에 건립된 비석으로, 건립 연호를 ‘개국’으로 적었다는 점이 아주 특이하다. 아마 후대에 각자(刻字)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비의 규모는 높이 155cm, 폭 60cm이며, 재질은 오석(烏石; 흑요암)이다. 비문은 부제학을 지낸 무정 정만조(鄭萬朝 1858~1936)가 짓고 글씨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로 유명했던 석촌 윤용구(尹用求 1853∼1939)가 썼다.

비석을 보호하는 비각은 1932년 건립되었으며 면적 8.68㎡의 정면 1칸·측면 1칸 규모로, 목조기둥에 팔작지붕을 올린 기와집이다. 1932년경에 지어진 건축물 중에서 균형 잡힌 형체와 정교한 기교가 엿보이는 건축물로서 사용된 부재도 아주 건실하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근대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건축물로서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갖춘 수려한 건축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각 내부 상단 벽면에 16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도 특이한데 이 벽화는 비문을 쓴 윤용구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윤용구는 해서와 행서에 능하고, 난과 대나무를 잘 그렸던 서화가였다. 비각 좌측면의 현판은 임신년(壬申年, 1932)에 윤명학(尹命學)이 쓴 것으로, ‘소화(昭和)’라는 일본 연호의 사용을 피하기 위해 고갑자(古甲子)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송덕비의 주인인 김진묵은 1859년(철종 10)에 보은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성학(聖學), 호는 용계(龍溪), 본관은 김해이다. 구한말 잦은 수해와 병란으로 백성의 삶이 힘들어지자 곡식을 나누어 주어 빈민구제에 앞장서자 주민들이 그 덕을 기려 송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한다. 김진묵은 내부(內府)와 외서(外署)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목릉(穆陵; 선조의 릉)을 다시 축조하고 비서승(秘書丞)에 올랐다. 효성이 지극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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