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겸

윤수겸

[ 尹守謙 ]

요약 조선 시대 문신. 임진왜란 때 불탄 왕조실록 재간에 참여하고, 《선조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동래부사가 되었을 때, 대마도주 소요시토모가 울릉도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자 이를 반박, 조선의 영유권을 명확히 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에 관련, 사형되었다.
출생-사망 1573 ~ 1624
본관 해평(海平)
명익(鳴翼)
활동분야 정치

본관 해평(海平). 익(鳴翼). 1601년(선조 34) 진사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주서(注書)가 되었다. 1603년 감찰로서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행병조정랑(行兵曹正郞)으로서 춘추관기주관을 겸임, 임진왜란 때 불탄 왕조실록 재간에 참여하였다.

1607년(선조 40) 전라도도사, 1608년(광해군 즉위) 헌납(獻納)이 되었다. 이듬해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0년 서흥부사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에 관련되어 추국(推鞫)되었다.

1612년 경상도양전사가 되어 양전절목(量田節目)의 문란을 시정하는 데 힘썼다. 1614년 순천부사를 거쳐 동래부사가 되었을 때, 대마도주 소요시토모[宗義智]가 차왜(差倭:使節) ·서계(書契)를 보내어 울릉도일본 영토임을 주장하자 이를 반박, 조선의 영유권을 명확히 하였다.

1617년(광해군 9) 황연평안등도조도사(黃延平安等道調度使)로서 철(鐵)을 많이 영납(領納)하여 가자(加資)되고, 1619년 분조참판(分戶曹參判)이 되었다. 1623년(인조 1) 포곡(布穀)을 횡령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에 관련, 사형되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