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숙

유인숙

[ 柳仁淑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1519년 기묘사화에 연좌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으나, 1521년 또다시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했다. 1537년(중종 32) 복직되어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에 휩쓸려 사사되고, 이듬해 역모죄로 부관참시 효수되었다.
출생-사망 1485 ~ 1545
본관 진주
원명
정수
시호 문정
활동분야 정치

본관 진주. 원명(原明). 정수(靜叟). 시호 문정(文貞). 1510년(중종 5) 문과에 급제, 이조좌랑 ·직제학 ·동부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519년 왕의 총애를 받던 조광조(趙光祖)를 미워하는 무리들이 일으킨 기묘사화도승지로서 연좌 투옥되었다가 정광필(鄭光弼)의 변호로 석방되고, 이듬해에도 무고를 받았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하였다. 1521년 또다시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태를 관망한 기회주의자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고 17년간 두문불출하였다.

1537년(중종 32) 복직되어 한성부좌윤, 대사헌, 대사간, 각 조(曹)의 판서를 거쳐 1545년(명종 즉위) 우찬성 겸판의금부사로서 윤원형(尹元衡) ·이기(李芑 )등이 일으킨 을사사화에 휩쓸려 영상 유관(柳灌) ·윤임(尹任)과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이듬해에는 경기 감사 김명윤(金明胤)의 밀고로 사사된 3인이 생전에 계림군(桂林君) 유(瑠) ·봉성군(鳳城君) 완(岏  )을 추대할 모의를 하였다는 역모죄까지 씌워 부관참시 효수되고, 가산의 몰수는 물론 3인의 자제는 모두 사형되었다. 1570년(선조 3) 역모죄명이 신설되고 관작도 복구되었다.

역참조항목

김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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