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태

유이태

[ 劉以(爾)泰 ]

요약 조선 후기 숙종 때 어의를 지낸 의원. 《마진경험방》을 토대로 예방·치료에 대한 의학전문서인 《마진편》을 펴냈다. 그 밖에 저서로 《실험단방》,《인서문견록》이 있다.
출생-사망 1652 ~ 1715
본관 거창
백원
신연당 또는 원학산인
활동분야 의학
출생지 경남 거창군
주요저서 《마진편》(1706)

본관은 거창(居昌), 호는 신연당(新淵堂)·원학산인(猿鶴山人)·인서(麟西), 자는 백원(伯源)이며, 1652년(효종 3)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서마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부는 정유재란 때 거창 좌수(座首)로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유명개(劉名蓋)이고, 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효자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안의읍지(安義邑誌)》 등에 등재된 유유도(劉有道)이다. 이름의 한자는 2가지로 표기되는데, '以泰'는 그의 가문에서, '爾泰'는 의서(醫書)에 사용되었다.

어린시절 고향인 거창에서 외가가 있는 산음(지금의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으로 옮겨와 그곳에서 의술활동을 펼쳤다. 50대 중반인 1706년(숙종 32) 두진(痘疹;천연두)·마진(痲疹;홍역) 등의 병이 크게 전염되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자 이에 자극받아 《마진경험방(痲疹經驗方)》을 토대로 하여 예방·치료에 대한 의학전문서인 《마진편(痲疹篇)》을 펴냈다. 이 책은 필사본으로 전해오던 것을 1931년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박주헌(朴周憲)이 활자본으로 출간하였다.

숙종 때 어의(御醫)를 지냈으며, 안산군수로 임명되었나 부임하지 않고 고향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전념하였다. 의술이 신기에 가깝다 하여 중국의 명의(名醫)인 편작(扁鵲)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마진편》 외에 《실험단방(實驗單方)》《인서문견록(麟西聞見錄)》 등의 저서를 남겼다.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갈전리 산35-1번지에 묘소가 있다.

역참조항목

이의립, 백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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