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강 석굴

윈강 석굴

[ 雲崗石窟(운강석굴) ]

요약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 서쪽 15km, 우저우강[武州江] 북안에 있는 사암(砂岩)의 낭떠러지에 조영(造營)된 중국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
윈강석굴의 석불

윈강석굴의 석불

소재지 중국 산시성 다퉁 서쪽 15km, 우저우강 북안
시대 북위시대
종류/분류 석굴사원
크기 전체 길이 약 1km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며 석굴의 총수는 42개이다. 동쪽 언덕에 제1∼4동(洞), 중앙 언덕에 제5∼13동, 서쪽 언덕에 제14∼42동이 있다. 북위(北魏)의 역사서 《위서(魏書)》의 〈석로지(釋老志)〉에 따르면, 사문통(沙門統:종교장관) 담요(曇曜)가 당시 문성제(文成帝)에게 석굴 조영을 주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담요 오굴(五窟)'이라고 불리는 제16동에서 제20동까지가 이때에 만들어진 석굴로, 460년대 초에 조영된 것이다.

윈강석굴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양식은, 제20동의 노좌대불(露座大佛:높이 14m), 제19동의 대불(높이 약 17m)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彫像)에 초기 양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치졸하지만 소박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서방 양식이 풍부한 작풍이다. 담요 이후는 전통과 외래 양식이 혼합되면서 다양해졌다. 이 석굴의 융성기는 486년 전후였는데, 이 무렵의 불상은 중국 고대의 복제(服制)를 모방하였다. 신체보다도 복제 표현에 유의하여 조각하였고, 얼굴은 길며 매우 신비롭다. 북위불(北魏佛) 또는 육조불(六朝佛)이라 하여 후에 하나의 조상 기준이 된 것도 이 무렵의 불상이다.

이 석굴은 북위의 문화사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인도·중앙 아시아와의 문화적 교류 및 한국과 일본의 고대문화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 생성의 자취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구(遺構)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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