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먼관

위먼관

[ 玉門關(옥문관) ]

요약 고대 중국의 서쪽 요지였던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 부근에 있던 관문.

한무제(漢武帝) 때 이광리(李廣利)가 페르가나원정(遠征:BC 104∼BC 103)이 개시되기 전까지는 관문은 둔황의 동쪽 교외에 있었고, 황허강[黃河] 부근에서 서쪽으로 연장된 장성(長城)의 맨 끝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원정 결과 둔황의 오아시스가 군사기지로 발전함에 따라 서쪽 교외로 옮겨졌고, 양관[陽關]과 함께 서역(西域)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 되었다.

그뒤 8세기 후반에 이르러 당(唐)나라가 쇠퇴하고 이 지방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위먼관은 다시 동쪽으로 옮겨져 안시현[安西縣] 동쪽의 분수령 근처까지 후퇴하였다.

1907년 영국의 고고학자 M.A.스타인은 둔황 서쪽, 카라놀 남쪽 사막 가운데에서 높이 9m, 사각형 모양을 한 보루(保壘)의 잔해(殘骸)를 발견하였는데, 그는 이것을 위먼관이 번창하였을 때의 유적이라고 확인하였다.

참조항목

간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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