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

서역

[ 西域 ]

요약 중국인이 중국의 서쪽 지역을 총칭하는 데 사용한 호칭.

서역이라는 말은 《한서(漢書)》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원래 동(東)투르키스탄(대체로 현재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타림분지에 산재해 있던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을 지칭하여, 그것을 ‘서역 36국’이라고 불렀다. 그 뒤 중국인의 서방에 관한 지식이 커짐에 따라 서역이 뜻하는 지역범위도 확대되어, 서(西)투르키스탄·서아시아·소아시아, 때로는 인도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동·서투르키스탄을 합친 중앙아시아, 특히 동투르키스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타림분지는 처음 흉노(匈奴)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전한(前漢)은 흉노의 세력을 물리치고 서방제국과의 교통·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BC 59년에 구자(龜玆:현재의 庫車) 동쪽의 오루성(烏壘城)에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설치하였다. 그 무렵 타림분지 북연(北緣)의 도시국가를 연결한 북도(北道)와 남연의 도시국가를 연결한 남도(南道)가 서방으로 통해 있었는데, 그것이 '실크로드(Silk Road)'의 기원이다.

그뒤 서역도호부는 흉노와의 세력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폐지·부활을 되풀이해 오다가 후한(後漢) 세력의 쇠퇴로 최종적으로 폐지되었다. 당대(唐代)에는 돌궐(突厥)을 쳐서 그 세력이 서역에 미치자 당은 북정(北庭)·안서(安西) 양 도호부를 설치하여 그 땅을 통치시켰다. 그와 같이 중국의 역대 왕조는 군사력으로 북방 유목민의 세력에 대항하여 오아시스 도시국가군을 지배하고 시장·교역로를 장악하였는데, 그것이 '서역경영(西域經營)'이다. 19세기 말 이후에 실시된 각국의 중앙아시아 탐사에 의해 동투르키스탄의 옛 문화가 밝혀졌는데, 그것을 '서역문화'라고 총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