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 Stupa of Buddhist Monk Soyo at Yeongoksa Temple, Gurye , 求禮 鷰谷寺 逍遙大師塔 ]

요약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탑.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지정종목 보물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 (내동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크기 높이 3.6m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승려 소요대사(逍遙大師) 태능(太能)의 승탑(僧塔)이다. 승탑(부도)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는 묘탑(墓塔)으로, 고승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세웠다. 승탑의 탑신에 ‘逍遙大師之塔(소요대사지탑)’, ‘順治六年庚寅(순치6년경인)’이라는 2줄의 명문이 남아있어, 이 승탑이 태능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승탑이며, 1650년(효종 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요대사 태능

태능(太能)은 1562년(명종 17)에 태어나 1649년(인조 27)에 입적한 승려로,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의 4대 문파(門派) 중 하나인 소요문(逍遙門)의 창시자이다. 13세에 출가하여 백양사(白羊寺)의 진대사(眞大師)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승려가 되었고, 선수(善修)의 제자가 되어 불법(佛法)을 익혔다. 이후 서산대사 휴정 밑에서 3년간 수학(修學)하였으며, 그의 법맥(法脈)을 이어 받았다. 임진왜란 때 방화로 전소된 연곡사(燕谷寺)를 중건하였으며, 금강산·오대산·구월산 등에 머물다가 1649년 연곡사에서 입적하였다. 1652년(효종 3) 태능이 입적하고 3년 후, 효종은 태능에게 '혜감선사(慧鑑禪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승탑의 구성과 양식

화강암으로 제작된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높이는 3.6m이고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본문 이미지 1

기단부는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을 얹어 구성했다. 하대석의 상단 중앙 테두리에는 몰딩을 장식하여 꾸몄고, 중대석은 공을 위아래로 압축한 듯한 편구(偏球) 모양으로 위 아래에 연꽃문양을 새겼다. 상대석에는 앙련(仰蓮: 솟아오른 연꽃무늬)을 조각하였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본문 이미지 2

탑신부는 승려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으로, 탑신의 8개의 면 중 6개의 면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조각하였고, 1개의 면에는 문(門) 모양을 새겼으며, 나머지 1면에는 탑의 주인과 건립 시기를 알려주는 ‘逍遙大師之塔(소요대사지탑) 順治六年庚寅(순치육년경인)’이라는 문구가 두 줄로 새겨져 있다. 지붕돌(옥개석)은 팔모지붕의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지붕의 처마 끝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귀꽃)이 달려있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본문 이미지 3

상륜부에는 앙화(仰花), 복발(覆鉢), 보개(寶蓋), 보주(寶珠) 등이 차례로 올려져 있으며, 연꽃, 봉황 등을 조각하여 꾸몄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본문 이미지 4

가치 및 의의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은 조선 중기 서산대사의 4대 문파 중 하나인 소요문을 창시한 태능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석종형 승탑이 주류를 이루었던 조선시대에 제작된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희소성이 있으며, 전체적인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탑비를 별도로 세우지 않고, 승탑의 탑신이나 다른 부재에 글자를 새겨 기록을 남겼는데,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는 이러한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기단부·탑신부·상륜부 전체에 조각 장식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있어 예술적인 가치도 뛰어나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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