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중영전쟁

제2차 중영전쟁

요약 1856년 영국 국기를 게양한 상선(商船) 애로(Arrow)호에 청나라 관헌이 들이닥쳐 중국인 해적을 체포한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영국과 중국 간의 분쟁으로 애로전쟁·애로호사건이라고도 한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동아시아 3국의 개항

제국주의의 침략과 동아시아 3국의 개항

사건 당시 애로호는 중국인이 소유하여 운영한 상선이었으나, 영국측은 영국 국기가 끌어내려진 일로 국기의 명예가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배상금과 사과문을 요구하였고, 이것이 거부되자 광저우[廣州] 교외 시가에 불을 질렀다. 영국은 청나라가 태평천국(太平天國)에 시달리는 것을 기화로 재차 무력으로 압력을 가하여, 청나라의 양이주의(攘夷主義) 세력을 무찌르고 공사(公使)의 베이징[北京] 주재권, 양쯔강의 개방, 상인(商人)의 중국 내지(內地) 여행권 등을 중심으로 한 조약개정 요구를 실현하려 하였다. 영국 본국에서는 광저우 방화사건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의회에서 논란이 일어 내각은 총사퇴하였다. 그러나 여당이 선거에서 다시 승리를 거두자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를 부추겨 양국군의 중국 파병을 단행하였다.

영국 및 프랑스 연합군은 1858년에 톈진[天津]을, 60년에는 베이징을 점령하여 베이징의 명원(名園) 및 원명원(圓明園) 등을 약탈 파괴하고, 60년 베이징조약을 강제 체결하게 하여 앞서 실현하려던 여러 요구사항과 그리스도교의 중국 내지 포교권(布敎權) 등을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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