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3세

알렉산드르 3세

[ Aleksandr III ]

요약 러시아의 로마노프왕조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황제(재위 1881∼1894)로 지주토지은행을 창설하고 경찰권의 강화, 대학자치제의 박탈 등 자유주의적 조치를 대폭 제한하였으며 반유대법과 대러시아화 정책을 감행하였다. 러시아-프랑스동맹을 맺었고 시베리아철도를 착공하였다.
출생-사망 1845.3.10 ~ 1894.11.1
국적/왕조 러시아
재위기간 1881년∼1894년
별칭 정식 명칭 Alexandr Alexandrovich
활동분야 정치

정식 명칭 Alexandr Alexandrovich. 알렉산드르 2세의 둘째 아들, 니콜라이 1세의 손자이다. 처음에는 군인이 될 생각이었으나 1865년 맏형 니콜라이가 죽자 황태자가 되었고, 이어 황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테러로 아버지가 암살되자 곧 즉위하여 전제주의의 강화를 목표로, 로마노프왕조의 군주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황제가 되었다. 귀족 ·지주에게 특별할인으로 장기의 유통자금을 대여해 주는 지주토지은행(地主土地銀行)을 창설하고 농민공동체에 대한 지주의 감독제, 경찰권의 강화, 대학자치제의 박탈, 특정 직업인의 중등교육의 제한, 초등교육을 교회의 감독하에 두는 등의 시책으로 대개혁시대(大改革時代)의 자유주의적 조치를 대폭적으로 제한하였다. 또 반(反)유대법을 펴서 유대인을 학살하는 한편,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트 지방에서의 대러시아화(化) 정책 등의 반동정치를 감행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불간섭정책을 취하여 아프가니스탄과의 분쟁으로 군대를 동원한 외에는 전쟁의 경험이 없다. 또, 신중하게 3제동맹(三帝同盟: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맹)’을 부활시켰으나, 관세문제 등으로 독일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러시아-프랑스동맹을 맺었다(1891∼1894). 이 동맹에 의하여 도입한 프랑스의 자본으로 남(南)러시아에 신공업이 일어나고, 시베리아철도도 착공하였다(1891). 치세(治世)에 러시아 자본주의의 약진이 시작되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러시아 농업을 약화시켰고, 러시아에도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뿌리를 내려서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한 노동운동이 혁명적인 급진적 지식계급인 나로드니키의 운동을 대신하게 되었다. 청 ·일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