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아리스토파네스

[ Aristophanes ]

요약 고대 그리스의 최대 희극 시인으로 최초의 작품 《연회의 사람들》 이래 시종 신식 철학, 소피스트, 신식 교육, 전쟁과 데마고그(선동 정치가) 등을 비난하고 풍자하였다. 그 밖에 《개구리》, 《복신》 등의 작품에서 일반적인 화제를 다루기도 하였다.
출생-사망 BC 445? ~ BC 385?
국적 고대 그리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그리스 아테네
주요저서 《개구리》 《복신》

아테네 출생. 페리클레스(BC 495?∼BC 429) 치하 최성기에 태어났다. 작품의 대부분을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BC 404)의 와중에 썼으며, BC 427년의 최초의 작품 《연회의 사람들》 이래, 시종 신식 철학, 소피스트, 신식 교육, 전쟁과 데마고그(선동 정치가)의 반대자로서 시사 문제를 계속 풍자하였다. 전해 내려오는 마지막 작품 《복신(福神) Plutos》의 상연은 BC 388년, 그뒤 아들을 작가로 세상에 내놓기 위하여, 자기 작품을 아들 이름으로 상연하였다고 하므로, 그는 BC 385년 이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 제목은 44편이 알려져 있으나,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그 가운데 11편, 그 밖에 많은 단편이 있다.

극의 경연에서는 1등을 네 번, 2등을 세 번, 3등을 한 번 하였다고 하지만, 기타 작품의 성과는 밝혀지지 않았다. 전해지지 않은 최초의 두 작품, 《연회의 사람들》과 《바빌로니아인》에 의하여, 신식 소피스트 교육과 데마고그의 클레온을 비웃고, 건전한 보수주의자로서 인기를 모은 그는, BC 425년에 《아카르나이의 사람들 Acharneis》에서, 전쟁 때문에 빈곤해진 농민의 편을 들어 평화를 제창하고, 클레온을 풍자하여 1등상을 탔다. BC 424년 《기사 Hippheis》로써 다시 클레온을 공격하였고, BC 423년에는 《구름 Nephelai》에서 소크라테스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신식교육을 비난하였다. 다음해에는 《벌 Sphēkes》을 상연하여 데마고그의 권력 근거인 배심제(陪審制)를 매도하였다. BC 421년에 니키아스의 화평에 의하여 소강상태를 맞은 전쟁 상황을 기록한 《평화 Eirēnē》를 지었으나, 전쟁은 얼마 후에 재개되었다.

시칠리아 원정 동안에 새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 《새 Ornithes》(BC 414)의 멋진 꿈은, 다음해의 원정군 전멸이라는 비보로 무참히 깨지고, 여기서 시인은 오랜 전쟁에 지친 시민의 마음을, 즉 여성의 성적(性的) 거부에 의한 평화 요구의 획득이라는 외설적인 가면 속에 숨은 열렬한 평화 희구의 극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이 BC 411년의 《여자의 평화 Lysistratē》이다. 거의 같은 무렵의 《여자의 축제 Thesmophoriazousai》는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BC 485경∼BC 406경)를 야유, BC 405년의 《개구리 Batrachoi》는 이 시인과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 비교한 것이다. 아테네 패배 뒤에는 시사문제를 다루지 않고, BC 389년의 《복신》은 일반적인 화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극에는 당돌한 요소도 많지만, 끝없는 상상력, 달콤한 리리시즘, 무진한 말, 홍소(哄笑)와 방자(放恣)는, 그를 당시 희극의 대표자로 부각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