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내전

스페인내전

[ The Battle for Spain ]

요약 1936년 2월 19일 스페인 제2공화국의 인민전선(人民戰線) 정부가 성립된 데 대하여 7월 17일 군부를 주축으로 하는 파시즘 진영이 일으켜 일어난 내전이다. 스페인 내전은 20세기 정치 사회적 모든 이념들이 집중되어 혼전을 일으킨 전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국내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국제 정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맞물려 일어난 내전이다. 왕정체제를 유지했던 스페인은 정치적 혼란과 분열이 거듭되고 있었으며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의 실패로 막대한 재정을 낭비하게 되었고 이때문에 경제적 빈곤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졌다. 스페인 군중들은 스페인 왕정의 부패와 독재정권 타도를 요구하였다. 1931년 4월 12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왕정을 반대하고 공화정을 지지했던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하였다. 공화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농지개혁 등의 정책을 내걸고 중산계급·노동자·농민의 지지를 얻었다. 이로써 스페인은 1931년 왕정을 이끌었던 국왕 알폰소 13세가 권좌에서 물러나 스페인을 떠나게 되었고 1868년 제1공화국이 들어섰다가 다시 왕정으로 복귀된 뒤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하지만 왕정을 지지하는 세력과 군부 그리고 교회의 반발이 심화되어 스페인은 내적인 갈등이 잠재되어 있었다.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알칼라 사모라가 국가의 총리로 취임하여 스페인은 민주공화국으로 근대적 정치체제로 전환되었다. 공화파는 스페인 정부는 학교에서 종교수업을 폐지를 시작으로 교회와 정치를 분리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군제를 개편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고 교회 성직자들과 군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미국 금융가의 파산 등 세계불황의 여파로 스페인 경제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고 주력산업인 농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때문에 정부의 지지자 였던 농민과 노동자의 파업이 이어졌다. 또한 공화국 내부에서는 공화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었으며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영향으로 볼셰비키화되어 노동자 총파업을 주도하며 정국을 사회주의 강경 노선으로 이끌었다. 1936년 스페인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인민전선을 형성하였으며 그해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왕당파와 군부를 위주하는 보수세력이 독일이탈리아의 지원의 받으면서 점차 정치적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스페인의 정국은 다시 급변하였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통해 무기를 지원받은 스페인 군부세력은 왕당파와 우익 보수세력·교회·대지주·대자본의 지지를 얻었으며 군사적 행동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마침 1936년 7월 13일 우익 정치지도자 였던 칼보 소텔로가 공화파 경찰에 의해 암살되자 국민 진영(Nationalists)은 이것을 계기로 군사행동에 들어갔다. 1936년 7월 17일 프랑코 장군의 지휘하에 모로코 주둔군을 선두로 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에는 독일·이탈리아가 군사 원조를 하였고 프랑코 군(軍)측 지역에서는 공화국에 반대하는 세력이 크게 확산되었으며, 교회는 프랑코군을 ‘신(新)십자군’으로서 지지하였다. 공화국측에서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시민군이 결성되어 방위의 주력이 되었다. 하지만 구 소련은 스페인 인민전선의 군사적 지원요청을 거부하였다. 1936년 사회주의자 등 좌파세력이 연합하여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고 9월 4일 사회당 좌파의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Francisco Largo Caballero 1869~1946)가 수상이 되었다.

독일·이탈리아·포르투갈은 프랑코 군 원조를 계속하였고, 영국·프랑스는 불간섭이란 이름 아래 공화국으로의 병기(兵器) 수출을 거부하였다.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항하여 소련은 병기를, 그리고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Communist International)은 국제의용군을 지원하여 스페인 공화국(정부군)을 도왔다. 공화국 내에서는 사회당 좌파와 무정부주의자들이 항전을 사회혁명의 실현으로써 추진하였으며, 소련의 원조를 배경으로 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던 공화국은 민주주의 옹호를 주장하는 등 인민전선 내부의 대립은 격화하였고 무력 충돌이 빈발하였다.

한편 프랑코 장군은 1937년 4월 19일 교권정치 부활을 주장하는 카를로스당(黨)과 협동국가를 내세우는 팔랑헤(Phalange) 당을 통합하여 전선 배후의 지배를 확립하였다. 1939년 1월 26일 바르셀로나는 프랑코 군에게 점령되었고, 영국·프랑스는 2월 27일 프랑코 정권을 승인하였다. 3월 23일 마드리드에서 프랑코 군과의 화평을 요구하는 반공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28일 프랑코 군이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내란은 끝나고, 프랑코 체제가 성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