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삼포

[ 三浦 ]

요약 조선 세종 때 왜인(倭人)들의 왕래를 허가한 세 포구(浦口).

지금의 부산진(釜山鎭)에 해당하는 동래(東萊) 부산포(釜山浦), 지금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해당하는 웅천(熊川) 내이포(乃而浦:薺浦), 지금의 울산 동구 방어진(方魚津)과 남구 장생포(長生浦) 사이에 있는 염포(鹽浦)를 말한다.

포구마다 왜관(倭館)을 설치하여, 왜인에 대한 무역을 관할하고 또 그들의 접대장소로 삼았다. 그러나 3포에는 왜인이 왕래할 수 있어도 상주(常住)할 수는 없었고, 왜인은 무역·어로(漁撈)가 끝나면 곧 귀국해야 했다. 그러나 이 법규를 어기고 3포에 상주하는 왜인이 날로 증가하여, 세종 말년에는 부산포에 약 350명, 내이포에 약 1,500명, 염포에 약 120명이 상주하였다.

이에 조정은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여러 차례 상주 왜인의 귀환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왜인의 상주를 비공식적으로 허락한 것이 뒷날 삼포왜란의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