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사학

사회경제사학

[ 社會經濟史學 ]

요약 경제사학의 한 분야.

경제사학연구의 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야기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이 연구자의 문제의식으로서 등장한 시기인 20세기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명칭으로, 반드시 고정적인 내용을 지닌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방법 여하에 따라 여러 문제의식을 달리하는 연구성과를 낳고 있는 역사과학의 한 분야이다.

경제사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성립된 것은 19세기의 독일 역사학파, 특히 G.슈몰러, K.뷔허, L.J.브렌타노 등 후기 역사학파 때부터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A.W.커닝엄, W.J.애슐리 등에 의해 국가의 경제정책을 주축으로 하는 역사연구로서 전개되었다(경제정책적 경제사).

20세기에 들어와 자본주의 열강의 대립이 심화되고 국내적으로는 노동운동이 고양되는 가운데, 사회경제사가 탄생하였다.

영국의 G.언윈, R.H.토니, G.D.H.콜, 독일의 A.H.벨로, J.슈트리더, 프랑스의 H.E.세, 벨기에의 H.피렌 등이 대표로서 실증연구의 진전 속에 고전이론에 대한 반증(反證)을 계속 발표하던 시기였다(實證史學).

또한 A.토인비의 산업혁명에 관한 문제제기를 받아서, P.J.망투, J.L.하몬드 부처(夫妻)의 비관론과 J.H.클래펌, E.립슨, T.S.애슈턴으로 이어지는 낙관론이 대립되어, 생산과정에서의 변혁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영향, 특히 임금노동자에게 부(負)의 영향을 끼쳤느냐 정(正)의 영향을 끼쳤느냐 하는 부(富)의 사회적 분배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도 이 시기였다. 토인비와 하몬드 학파가 사회경제적 질(質)의 변화를 중시한 데 대하여, 클래펌 학파는 산업혁명의 기술적 성과가 국민의 경제생활을 수량적으로 어떻게 향상시켜 근대사회를 이룩하였는가 하는 점을 중시하여 역사의 수량적 분석 ·파악을 강조하였다.

그 후 영국의 경제사 연구는 전반적으로 근대경제학적 사고를 도입, ‘경제 제량(經濟諸量)의 변동’을 추적하여 사회경제의 질적 단층(質的斷層)을 거부하고 사회경제적 발전의 연속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대공황 후의 1930년대에 들어와 먼저 독일의 A.도프시가 독일 역사학파의 발전단계설(發展段階說)을 실증적으로 비판하여 단계의 계기(繼起)를 부정하고, 그 병존 ·교체를 지적함으로써 발전단계설을 철저하게 비판한 M.베버와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역사상(像)에 대한 반명제(反命題)를 제공하였는데, 이것은 영국경제사학의 조류에 접근한 것이었다.

한편 이 시기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성과도 발표되기 시작하였는데, 영국경제사 연구에 있어서의 E.A.코스민스키의 매너(manor:莊園) 연구 등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또 프랑스에서는 ‘사회학주의(sociologism)’의 영향을 받은 M.블록의 농촌사, G.르페브르의 혁명사 등이 프랑스 특유의 학풍을 형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증사학 분야에서는 전후의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성장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통계적 ·수량적 분석이 성행하였다(성장경제사학). 또, 여기에 ‘미국 사회학’을 가미한 ‘경영사학’이 확립되어, 그 종합적인 성과로 W.W.로스토의 《경제성장의 제단계 The Stages of Economic Growth:A Non-Communist Manifesto》(1960)가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