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

사학사

[ history of historiography , 史學史 ]

요약 인류의 생활·사회에 대한 과거의 역사기술과 연구방법이 현재에 이른 발전의 내용을 학문적 입장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역사이론의 학문.

역사학은 대략 설화적(說話的)인 역사, 교훈적 또는 실용적인 역사, 발전적인 역사의 순으로 발달하여 왔다. 설화적 역사의 전형이라 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歷史)》라고도 하는 《연구(硏究) Historia》에는 많은 설화와 견문이 진위(眞僞)의 검토 없이 기술되어 있다. 교훈적 또는 실용적 역사의 전형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중심으로 한 《정치·군사사(政治軍事史)》(8권)이다.

인간심리의 통찰과 사료(史料)의 비판 등에 의해 그 책은 세계 최초의 학문적인 역사서로 지칭되고 있는데, 투키디데스는 과거의 정치와 군사를, 장래의 유사한 사건에 부딪쳤을 때에 취해야 할 행동의 지침으로 하려는 입장에서 기술하여 행동하는 인물의 심리적 동기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였다. 로마의 지중해 세계정복 과정을 기술한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인 폴리비오스는 투키디데스의 역사풍을 계승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진전시켰다.

로마시대의 카이사르나 타키투스의 역사 기술은 다 함께 실용적 의도에서 출발하여 정치가의 안내 또는 행위의 규범으로서 보탬을 주려고 한 것이었다.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태풍 속에서 씌어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神國) De civitate Dei》은 사료비판의 관점에서는 후퇴하고 있지만, 신학적(神學的) 목적론에 기초한 필연적인 이념에 지지되어, 여기서 비로소 발전적 역사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과학적 비판성이 첨가된 근대역사학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시작된다. 이 시대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 등이 현실적·세속적인 역사풍을 전개하여, 역사를 ‘신학의 노비’로서의 지위에서 인간의 손으로 이루는 것으로 해방시켰다. 18세기의 계몽주의는 반(反)역사적 경향을 취하였지만, 바롱 몽테스키외(Baron Montesquieu), 볼테르(Voltaire),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등에 의한 역사기술은 근대역사학의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하였다.

19세기는 '역사의 세기'라고 불릴 만큼 역사 연구가 각국에서 크게 발달하였는데, 특히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를 출생시킨 독일이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 세기의 중기까지는 정치 군사를 주로 하는 정치사가 역사기술의 주내용을 이루고 있었지만, 스위스의 역사가 야코브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 문화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1860) 등에 의해서 문화사의 의의가 인식되게 되었으며, 이어서 사회경제사 분야도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