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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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磻溪隨錄 ]

요약 조선 후기 학자 유형원(柳馨遠)의 국가 운영과 개혁에 대한 견해를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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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목판본
저자 유형원
시대 조선시대

목판본, 26권 13책이다. 1652년(효종 3)에 쓰기 시작하여 1670년(현종 11) 완성하였다. 영조 때 양득중(梁得中)·홍계희(洪啓禧)·원경하(元景夏) 등의 추천으로 임금과 세자의 관심을 끌었으며, 1770년(영조 46) 왕명에 의해 경상감영에서 관찰사 이미(李瀰)가 주관하여 간행하였다.

저자는 성리학의 근본 문제로부터 신선술(神仙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지금은 이 책만 전해진다. 저자는 발문에서 학자가 평소 도(道)를 강구하고 사물은 대체(大體)만 알면 된다고 하는 입장을 비판하여 천지의 이(理)와 성인의 도(道)가 결국 사물을 통해 구현된다고 함으로써 이 저술의 의미를 밝혔다. 제목은 그때그때 자유롭게 기록하였다는 뜻이지만 매우 정제된 체제로 되어 있다.

개혁안의 주제는 권1∼8은 전제(田制), 권9∼12는 교선(敎選), 권13∼14는 임관(任官), 권15∼18은 직관(職官), 권19∼20은 녹제(祿制), 권21∼24는 병제(兵制), 권25∼26는 속편(續篇)으로 구성되었다. 각 주제별로 절반은 중국·한국의 사례를 모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 〈고설(攷說)〉이므로, 현실 개혁안은 13권으로 이루어졌다. 실록 등에서 이 책을 13권이라고 설명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말미에는 군현제(郡縣制)에 대한 내용이 보유(補遺)로 붙어 있으며, 그 밖에 이미·오광운(吳光運) 등의 서문·발문과 저자의 간단한 발문이 붙어 있다.

맨 앞의 '전제'는 토지소유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서, 일부 계층이 대토지를 소유한 데 사회 모순의 근원이 있다고 보고 균전제(均田制)를 내세워 실제 경작자에게 토지를 주어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국가방위와 재정을 담당하게 하자고 주장하였다. '교선'은 인재 교육과 선발에 대한 것으로서, 향약(鄕約)과 같은 사회조직을 통해 전체 인민을 교화하는 바탕 위에서 단계별 교육기관을 운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각 군현의 읍학(邑學)과 서울의 사학(四學)을 1차 교육기관으로, 각 도의 영학(營學)과 서울의 중학(中學)을 2차 교육기관으로, 중앙의 태학(太學)을 최고 학교로 하고, 능력에 따른 각급 학교의 천거에 의해 진학하며 비용은 전액 국가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재등용은 폐단이 많은 과거제를 폐지하고 태학을 마친 자를 진사원(進士院)에 소속시켜 실무를 익히게 한 뒤 문벌이 아닌 능력에 따라 등용하게 하였다. 과거제 대신 천거에 의한 공거제(貢擧制)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임관'은 관료제 운영에 대한 것으로서, 실무 관직자에 해당하는 당하관(堂下官)과 지방 감사 및 수령의 재임 기관이 너무 짧은 것을 문제로 파악하여 그 임기를 6년 내지 9년으로 늘리자고 하였다. 또한 그들에게 예하 관인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공로에 대해서도 승진보다는 다른 보상을 주어 전문 관료제를 운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직관'은 통치 기구에 대한 것으로서, 중점은 비변사를 폐지하여 의정부에서 육조(六曹)로 이어지는 행정체계를 복구하고 3정승 중에 영의정만을 두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또 필요 이상의 관서를 폐합하고 지방관의 권한을 늘리자고 하였다. '녹제'는 녹봉에 대한 것으로서, 고위 관인부터 서리·관속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급여를 주고 부정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병제'는 국가방위에 대한 것으로서, 병농일치를 원칙으로 하여 토지 4경(頃)을 경작하는 농민이 정병 1명과 보인(保人) 3명을 내되 사(士)와 관리는 군역을 면제하는 것이었다. 또한 방어시설과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밖에 '속편'에서는 경연·의관·주택·수레 등 다양한 주제를 논하였다. 여기서는 노비 세습제를 폐지할 것 등 이 주장되었다. 보유에서는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군현제를 정비할 것을 주장하였다. 저자는 위와 같은 개혁안에 대해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대책을 제시하였다. 여러 개혁론은 토지소유관계의 개혁을 초점으로 하며, 그것은 그 뒤 이익(李瀷)·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지는 중농주의적 실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논점이 되었다.

대토지 소유자의 반발에 대해 '극형으로 다스린다'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처럼 실제 시행하기에는 많은 약점을 지닌 것도 사실이지만, 저자가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 탐구한 성과로서 후대의 학자에게 사회 개혁에 대한 열정을 고취하고 학문적 지표를 제시하였다.

참조항목

유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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