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위

박위

[ 朴葳 ]

요약 고려 말·조선 전기의 문신. 요동정벌 때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에서 회군, 최영을 몰아내고 대마도 적선을 불태웠다. 이성계와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했다. 조선 건국 후, 양광도 절도사로 왜구를 물리쳤다. 1차 왕자의 난 때 피살당했다.
출생-사망 ? ~ 1398
본관 밀양(密陽)
별칭 충의백(忠義伯)

본관 밀양(密陽). 처음 우달치(迂達赤)로 등용되었다가 김해부사로 승진하였다. 왜구를 격퇴하고, 1388년(우왕 14) 요동정벌 때는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崔瑩)을 몰아낸 뒤 경상도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어 함선 100여 척을 이끌고 대마도(對馬島)를 쳐서 적선 300여 척을 불태웠다. 후에 자혜부판사(慈惠府判事)가 되어 이성계와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여 문하부지사에 올라 충의백(忠義伯)에 봉해지고 공신에 책록되었다.

1390년(공양왕 3) 김종연(金宗衍)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풍주(豊州)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 회군(回軍)의 공신으로 녹권(錄券)과 녹전(祿田)을 받았다. 조선 건국 후에는 문하부참찬사를 거쳐 양광도(楊廣道) 절도사가 되어 왜구를 물리쳤다.

그때 밀성(密城)의 소경 이흥무(李興茂)의 옥사가 있어 이에 관계한 혐의로 구금되어 대역죄로 몰리게 되었으나 태조의 호의로 석방되어 서북면 도순문사로 나갔다. 그러나 사헌부의 거듭되는 탄핵으로 결국 파직되었으며,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과 함께 정안대군(태종)에게 피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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