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공예

민속공예

[ 民俗工藝 ]

요약 각 지역마다 전승되어온 전통적 기법과 그 고장 산물을 이용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조형예술.

개관

민속공예를 통해서 만들어진 물건을 민속공예품 또는 민예품(民藝品)이라 한다.

가장 오래 된 형태는 원시공예(原始工藝)이다. 유적에서 출토되는 구석기는 공구적(工具的) 성격이 짙어 이것을 공예라 부르기는 어려우며, 참다운 공예는 신석기시대에 토기가 등장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원시공예의 주체는 석기·토기, 이어서 목기가 있고 간혹 철기도 출토되고 있으며, 편물(編物)·피혁품·수피가공품(樹皮加工品) 등도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공예품으로는 금속기(金屬器)·직물·염직물·유리 등이 있으며, 녹로(轆轤) 기타 공구가 학문의 발달과 함께 다양하게 나타나고, 정주생활(定住生活)에 따라 기물(器物)의 종류가 풍부해진다.

한편 신분제도에 의한 직제가 시작되어 여러 종류의 공장(工匠)이 나타나고 공예품과 조세(租稅)가 관련을 갖게 되지만, 일용품은 원시공예를 계승하여 여전히 자가제품이 많이 차지하였다.

중세에도 고대공예의 성격이 계승되었으며, 종교의식에 속하는 제기(祭器) 등이 발달하였다. 중세 말기가 되면서 전문직에 의한 횡적(橫的) 조직이 강화되어 공동체적인 계(契)가 출현하고 민예품도 상품으로 시중에 유통되기도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자아의식이 높아지고 회화·조각 등이 그 지위를 굳히게 되며 다기(茶器)와 같은 관상용 민예품이 나타난다. 민속공예가 확실한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후반부터라 할 수 있다.

근세에 이르자 미술공예가 일어나 귀족공예와도 같은 부유층을 위한 귀족적 공예가 시작되는 한편, 경제(經濟)의 발달과 함께 상품적 성격이 강해지고, 도자기·금속공예·목공·피혁 등 전문제품이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직물·편물 등은 여전히 자가제품이 많았다. 이리하여 직업의 분화가 현저해지고 대중의 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라 대중 자체의 생활문화를 구축하면서 오늘날의 민예품으로 이어진다.

즉 민속공예품은 서민적 문화유산인 고(古)민예품과, 고민예품의 장점을 현대생활에 연장·적응시킨 신작민예품으로 나눌 수 있다. 농·어민이 여가를 이용하여 자기 손으로 생활도구나 장식품을 만들어 자기 집에서 쓰고 남는 것을 싼 값에 팔거나 물물교환을 하던 것이 민속공예의 원형이며, 여기에서 파생하여 각 장인(匠人)의 손으로 이루어지던 물건을 고민예품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그 소박한 미(美)가 많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되자, 민속공예는 일반화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각기 그 전통에 바탕을 둔 신작민예품이 양산되었다. 중근동의 도자기·염직물, 동·북유럽이나 러시아의 목공품, 서유럽의 금속공예품, 남유럽의 피혁제품 등에서 뿌리깊은 민속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민속공예

한국의 민속공예는 역사가 매우 오래 되어 선사시대에 이미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가 만들어졌으며, 석기시대 말기에는 경질토기(硬質土器)가 만들어졌음을 김해토기(金海土器)에서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의 회청색토기, 신라의 항아리 ·굽다리접시[高杯] ·단지[坩] ·뿔잔 등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 ·주형토기(舟形土器) 등은 사자(死者)와 함께 부장하던 명기(明器)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기형(器形)과 표면처리에서 나타나며 이 시대의 것으로는 목이 긴 병 ·무개굽다리접시[無蓋高杯] ·뚜껑합[有蓋盒] 등이 나타난다. 고려시대에는 도자기공예가 찬란하게 꽃피던 청자시대(靑瓷時代)로, 기법도 다양하여 많은 명작을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경계로 그 전기에는 분청자기(粉靑瓷器)가 만들어졌고 후기에는 청화백자(靑華白瓷), 즉 조선백자가 나타났다. 이들 선조들의 기법은 현대의 도예가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한편 목공예(木工藝)도 거의 같은 시대에 이루어졌으리라 믿어지나, 1000년, 2000년을 경과하는 사이에 땅속에서 부식되어 흔적을 찾기 힘들다. 다만 덕흥리(德興里) 고분, 쌍영총(雙楹塚) ·무용총(舞踊塚) 등의 벽화를 보면 왕이나 귀인들이 평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있고, 각저총(角抵塚)과 무용총 벽화에는 반상(飯床)이 그려져 있어 한국 목공예가 이 시대 이전부터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최초의 뚜렷한 목공예품은 525년에 이루어진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 발견된 목관(木棺) ·머리고임[頭枕] ·발바침[足座] 및 드리개[佩飾] 등이다. 《삼국사기》 통일신라시대의 기록을 보면 목기를 만드는 마전(磨典), 책상과 반상류(盤床類)를 만드는 궤개전(机槪典), 버들가지와 대나무로 상자를 만드는 양전(楊典), 여러 기물에 칠을 하는 칠전(漆典) 등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목공예는 장족의 발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목공예는 한국 민속공예의 첫째가는 위치를 굳혔고 그 기법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그 밖에 한국의 중요한 민속공예로는 화각공예(華角工藝:쇠뿔공예) ·나전공예(螺鈿工藝) ·지공예(紙工藝) ·자수공예(刺繡工藝) ·초고공예(草藁工藝) ·매듭공예 등이 있으며, 이들 민속공예기법의 보호 ·전승을 위하여 국가에서는 그 기능자를 국가무형유산 기능보유자로 지정하는 등 보존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