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예

목공예

[ 木工藝 ]

요약 목재를 이용하여 구조물 ·기물 등을 만드는 기예(技藝).
목공예 공방

목공예 공방

목재는 금속이나 돌에 비하여 다루기가 쉬우므로 이를 이용한 공예도 다양하여 크게는 건축에서부터 적게는 퇴침 ·목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공예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정확한 시기를 측정하기가 곤란하다. 왜냐 하면 목재는 쉽게 부패하므로 그 유품(遺品)이 적기 때문이다. 다만 목재의 성형(成形)과 가공기술은 인류문화의 발전과 함께 발달하여왔음은 능히 추적할 수 있으며, 최초의 목제품은 통나무배나 상자같은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이것들은 석도(石刀)로 후벼파거나 불로 태워 탄화(炭化)된 부분을 파내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이집트의 고(古)왕국시대에는 톱이 발명되어 가공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였고, 의자 ·테이블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신왕국시대에는 더욱 정교 ·화려하게 되어 보석상자가 만들어졌으며 채문(彩文) ·상감(象嵌) ·도금법 등이 사용되었다. 12∼13세기경 고딕 건축양식이 발달하면서 유럽에서는 교회용 의자나 테이블이 대량으로 만들어졌고 제작기술도 고도화하여 많은 고전양식의 가구가 출현하게 되어 17∼18세기에는 가구를 중심으로 한 목공예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한국의 목공예 역사도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로 소급하여 생각할 수 있으나 전술한 바와 같이 그것은 추리에 불과할 뿐 아무런 역사적 자료가 없다. 다만 다소라도 근거를 찾는다면 고분시대 이후가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삼국시대를 기점으로 한 것을 뜻한다. 고구려의 고분인 안악(安岳) 3호분[冬壽墓]을 비롯하여 덕흥리(德興里)고분, 감신총(龕神塚), 쌍영총(雙楹塚), 무용총(舞踊塚) 등의 벽화에 보이는 평상(平床)이나 반상도(飯床圖) 등은 이미 이 시대에 목공예가 많이 발달하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또 한 ·당(漢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짐작된다. 통일신라 직후에 축조된 안압지(雁鴨池)에서 출토된 주사위 ·인형 ·남근(男根) 등의 목제품은 옻칠로 방수처리가 되었으며, 무녕왕릉(武寧王陵)에서는 커다란 판재(板材)로 된 목관(木棺)을 비롯하여 두침(頭枕)과 족좌(足座) 및 패식(佩飾)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들 물건은 대개 옻칠이나 채색을 하고 혹은 금은으로 치장을 하였다. 《삼국사기》 ‘잡지편(雜志篇)’ 직관조(織官條)를 보면 통일신라에는 도시행정을 관장하는 전읍서(典邑署)에 사(史) 16명, 목척(木尺) 70명을 두었다 하였으니 목척은 대목(大木)을 뜻하는 것으로 당시 국가적 조영(造營)사업이 크게 일어났음을 짐작케 한다. 그 밖에도 목공예를 다루는 관서로 마전(磨典) ·궤개전(机槪典) ·양전(楊典:버들고리를 만드는 곳) ·칠전(漆典) 등이 있었으니 건축공예뿐만 아니라 가구 ·기물 제작도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목공예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시대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나전칠기는 고려청자와 더불어 이 시대의 빛나는 업적이었다. 문종(文宗) 연간에 작성된 별사(別賜) 명단에 의하면 중상서(中尙書)에는 소목장(小木匠) ·조각장 ·나전장(螺鈿匠) ·주렴장(珠簾匠) ·죽저장(竹綿匠) ·소장(梳匠) ·마장(磨匠) 등을 두었고, 도교서(都校署)에는 목업(木業) ·조각장, 상승국(尙乘局)에는 안교장(鞍痢匠)을 두었다 하였으니 목공예는 기술별로 세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목공예를 대표하는 나전칠기로 현존하는 것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경상(經箱)이 있으며, 이것들은 정부에서 특별히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을 두고 제작한 것으로서 국내에는 한 점도 없으나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에 보관된 것들이 고려 공예의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자 목공예는 일체 인공적인 장식성, 인위적인 조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간결한 선, 명확한 면, 그리고 목재 자체가 갖는 자연목리(自然木理)의 미로써 하나의 통일성을 나타내고 있다. 공예기술은 더욱 세분화되어 경공장(京工匠) ·외공장(外工匠)으로 불리는 이들 기술자는 정부 여러 부서에 배치되어 건축공예를 위시한 각 부문에 종사하였다. 나전칠기는 연당초(蓮唐草) ·보상화(寶相華) ·용봉(龍鳳)무늬 등이 대담하게 표현되다가 중기에는 매화(梅花) ·화조(花鳥) 등의 의장이 나타나고, 말기에는 십장생(十長生) ·산수(山水) 등의 자연묘사가 많아진다. 이 시대의 목공예품으로는 장(欌) ·궤(櫃) ·사방탁자(四方卓子) ·문갑(文匣) ·연상(硯床) ·필통(筆筒) ·주상(酒床) ·식기(食器) 등을 대표작으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계승되어온 목공예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이 변화하였다. 이 때까지 손작업에만 의지하던 목공예가 과학기술의 진전과 함께 목공기계와 강력한 접착제의 출현으로 점차 공장생산으로 이행되었다. 또한 곡목법(曲木法)이나 성형합판기술의 개발은 목재에 의한 새로운 조형형태를 제시하게 되었으며 다양한 디자인의 발전과 함께 짜임새 있고 세련된 목공예로 변화하였다. 영국식 가구 ·이탈리아 가구 ·북유럽식 가구 등은 민속공예에 현대감각을 살린 훌륭한 공예품이며 한국에서도 근래에는 이들 나라에 못지않은 훌륭한 목공예품이 생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