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호

민규호

[ 閔奎鎬 ]

요약 조선시대 척신(戚臣). 대원군 실각 후 고종이 친정하자 예조판서·이조판서·무위영도총제 등을 지냈다. 척신의 대표격으로 국정을 거의 도맡았다.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에 반대, 개국론을 내세웠다. 글씨에 능했다.
출생-사망 1836 ~ 1878
본관 여흥(驪興)
경원(景園)
황사(黃史)·사호(賜號)·지당(芝堂)
시호 충헌(忠獻)
국적 한국
출생지 서울

본관 여흥(驪興). 자 경원(景園). 호 황사(黃史)·사호(賜號)·지당(芝堂). 시호 충헌(忠獻). 서울 출생. 1859년(철종 10) 문과에 급제, 1866년(고종 3) 민치록(閔致祿)의 딸이 왕비가 됨에 따라 그 일족으로 중용되어 이조참의가 되고, 1869년 형조참판·이조참판을 지냈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하자 예조판서·이조판서·무위영도총제(武衛營都摠制) 등을 지내며, 척신의 대표격으로 국정을 거의 도맡았다.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에 반대하여 개국론(開國論)을 내세웠다. 1878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7일만에 죽었다. 예서·행서·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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