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세

명제세

[ 明濟世 ]

요약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광복단(光復團),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를 결성하여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85 ~ 1950(납북)
본관 서촉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평북 영변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90)

본관은 서촉(西蜀)이며, 평안북도 영변(寧邊)에서 출생하였다.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1909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 만주 각지와 시베리아 등지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0년 이후에는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4월 18일 임시정부의 옹호와 독립운동 원조를 목적으로 톈진[天津]의 프랑스 조계 집현리(集賢里)에 조선홍(趙宣弘)·김철(金哲) 등과 함께 불변단(不變團)을 조직, 단장인 조선홍에 이어 부단장에 임명되었다가 8월 15일 단장에 선임되었다. 또한 10월에는 박은식(朴殷植)·안정근(安定根)· 도인권(都寅權)·박문용(朴文鎔)등 30여 명과 함께 상해임시정부 제2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1922년 12월 연희전문학교 학생 염태진(廉台鎭)·박태화(朴泰和)등 50여 명이 조선물산장려운동 단체인 자작회(自作會)를 조직하고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이자 이 운동을 전국에 확산시키기 위해 1923년 1월 서울에서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 10월에는 조선민흥회(朝鮮民興會) 위원으로 선출되어 신간회와 합작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과 국민당 부위원장, 한국독립당 중앙상무위원을 지냈고, 1948년 초대 심계원장(審計院長), 1949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최고고문을 지냈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을 지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