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마을

동족마을

요약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同姓)의 가호(家戶)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

동성(同姓)마을이라고도 한다. 한국과 중국에서 일찍부터 성립되어 온 취락형성의 한 형태로, 일본의 일부지방에서도 유사한 예를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동족마을 형성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한층 발전한 것은 조선시대였다. 당시의 동족마을 중에는 군현(郡縣)의 수령(守令)의 통제를 받지 않고 그 자체의 운영조직인 ‘사구회(社構會)’에 의해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던 것도 있었다. 1930년도 조사에서는 전국에 1만 5000여 개의 동족마을이 확인되었고, 이 중에는 지방의 호족(豪族) ·사족(士族) 및 퇴관한 고급 관인에 의해 세워진 저명 동족마을 1,700여 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동족마을은 지방 세력자의 자손, 사전(賜田)에 은퇴 ·정주한 중앙관직자의 자손 및 남부지방으로부터 북부지방으로 이주한 개척자의 자손 등이 대대로 그곳에 눌러살면서 분가(分家)를 거듭함으로써 성립되었으며, 그 존립에는 유교적인 생활관습이 크게 작용하였다.

즉,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사상에 바탕을 둔 선조의 묘지 수호, 제사의식 존중의 생활관습이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한 동족마을 형성의 주된 요인이 되었고, 그 밖에 문중재산의 공동이용, 영농에서의 상호협동, 관혼상제 기타 생활면에서의 상호부조 등 경제적인 협동 및 선조의 관직 ·사회적 지위 등을 계승한 문벌(門閥)이 사회활동의 기반이었던 유교적인 봉건사회의 풍토 등이 동족마을의 존립에 크게 작용하였다.

동족마을은 봉건적인 사회체제의 붕괴,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 6 ·25전쟁 때의 전출입 인구의 증가 및 근래 국가경제의 발전에 따른 도시의 인구 흡인력 증대와 도시화의 추세 등으로 인해 점차 와해되어 가고 있으나, 지금도 전국적으로 동족마을의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다.

참조항목

씨족, 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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