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철

남정철

[ 南廷哲 ]

요약 조선 후기의 대신. 호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갑신정변 때는 개화당 축출을 위해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하였다. 국권피탈 후 일본 작위 남작(男爵)을 받았다.
출생-사망 1840 ~ 1916
본관 의령
치상
하산

본관 의령(宜寧). 자 치상(穉祥). 호 하산(霞山). 유신환(兪莘煥)의 문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음관(蔭官)으로 익위(翊衛)가 되었다.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남학교수(南學敎授) ·장령(掌令)을 거쳐 예조 ·호조 ·공조의 참의(參議)를 지냈다. 1884년 천진주차독리통상사무(天津駐箚督理通商事務)가 되고, 갑신정변 때는 김윤식(金允植)과 함께 청나라 병영(兵營)에 가서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開化黨) 축출을 위해 출병을 요청하였다.

갑신정변 실패 뒤 사대당(事大黨) 내각이 조직될 때 호조참판에 기용되었다가,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가고 이어 보정부(保定府)에 있는 대원군을 문안하였다. 1885년 다시 천진주차독리통상사무로 부임하였다가, 고종을 계칙(戒飭)하는 리홍장[李鴻章]의 글을 가지고 돌아와 통리교섭통상사무협판(統理交涉通商事務協辦) ·형조판서 ·대사헌 ·예조판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1893년 통리교섭통상사무독판(督辦)이 되어 일본의 변리공사(辨理公使) 오이시[大石正巳]와 방곡령(防穀令) 문제로 인한 배상문제를 협의하였고, 오스트리아 전권위원(全權委員) A. R. 베커와 조오수호통상조약(朝墺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였다.

1894년 함북관찰사로 갔다가 내부대신에 승진하여, 홍문관학사와 중추원의관(議官)을 겸직하였다. 이어 궁내부특진관(特進官) ·태의원경(太醫院卿)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 등을 지내고, 1909년(융희 3)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910년 국권피탈이 되자 일본 작위 남작(男爵)을 받았다. 글씨를 잘 써 덕수궁 대한문 중수 현판, 태박산 선사양각(璿史兩閣) 중수의 상량문(上樑文) 등을 썼다. 문집 30권이 있으며 묘는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에 있다.

역참조항목

방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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