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김태연

[ 金泰淵 ]

요약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무장항일단체 구국모험단을 조직, 국내 일본 관청 파괴와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주도했고 대한적십자회 상의원을 지냈다. 또 대한교육회를 조직하고 서무부원이 되어 민족교육에 참여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서기 및 황해도 의원에 선임되었다.
출생-사망 1891.12.3 ~ 1921.11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황해 장연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95)

황해도 장연(長淵)에서 출생하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19년 5월 중국 상하이망명, 여운형(呂運亨) 등과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을 조직하여 의사원(議事員)으로 상하이 한인들의 자치활동을 통솔하였다.

같은 해 6월 김성근(金聲根)·이춘숙(李春塾)·김치근(金致根)·이영렬(李英烈) 등 단원 24명과 함께 무장항일단체인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을 조직, 참모부장으로 국내의 일본 관청 파괴와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주도하였으며, 7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조직한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상의원에 임명되었다. 이어 10월 손정도(孫貞道) 등과 함께 대한교육회(大韓敎育會)를 조직하고 서무부원이 되어 민족교육에 참여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서기 및 황해도 의원에 선임되어 1920년까지 활동하였다.

1921년 8월에는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太平洋會議外交後援會) 조직에 참여, 서무간사(庶務幹事)를 맡아 한국의 독립을 세계 열강에 호소하였고, 11월 여운홍(呂運弘)의 뒤를 이어 인성학교(仁成學校) 교장에 임명되어 한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활동하다 병사하였다. 온 가족이 3·1운동에 참가하여 어머니와 아내는 옥사하고 아버지도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