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김영랑

[ 金永郞 ]

요약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하며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을 발표하였다.
영랑 김윤식 시비

영랑 김윤식 시비

출생-사망 1903.1.16 ~ 1950
본명 윤식(允植)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전남 강진(康津)
주요저서 《영랑시집(永郞詩集)》(1935)
주요작품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결혼하였으나 1년 반 만에 사별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며, 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크리스티나 로세티, 존 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그러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귀국하여 고향에 머물며 은거하였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고,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김영랑 연보
출생 1903.1.16~ 사망 1950

1903

1월 16일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출생. 본명은 김윤식.

1909

강진보통학교에 입학.

1916

결혼했으나 1년 반 만에 사별함.

1917

휘문의숙에 입학.

1919

3ㆍ1운동 당시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 치름.

1920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에 입학.

1923

김귀련과 재혼.

1930

<시문학> 창간호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등 30편 발표.

1934

<문학> 창간호에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발표.

1935

첫 시집 《영랑시집》 발간.

1939

<문장>에 시 <독을 차고>, <시림>에 시 <전신주> 발표.

1945

해방 후 우익 운동에 참여.

1949

《영랑시선》 간행.

1950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에 맞아 사망. 이태원 남산 기슭에 가매장.

1954

망우리에 이장.

1981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