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당의 난

김보당의 난

요약 1173년(명종 3) 김보당이 무신정권에 항거한 난.

계사(癸巳)의 난이라고도 한다. 김보당은 1171년(명종 1)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지냈으며, 명종 때 최윤의(崔允儀) ·이원응(李元膺) ·오중정(吳中正) ·이준의(李俊儀) 등을 탄핵하다가 공부시랑으로 좌천되었다. 이로 인해 명종 ·집권무신에 대한 반감이 생겨, 점차 무신정권에 비판적으로 되었다.

1173년 간의대부로 동북면병마사로 나갔을 때 앞서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정중부(鄭仲夫) ·이의방(李義方) 등을 물리치고 전왕(前王) 의종(毅宗)을 세우고자, 녹사(錄事) 이경직(李敬直) ·장순석(張純錫) 등과 거병하기로 모의하였다. 동계(東界)에서 군사를 일으켜 장순석 ·유인준(柳寅俊)을 남로병마사(南路兵馬使)로, 배윤재(裵允材)를 서해도병마사로 삼았으며, 이때 동북면지병마사 한언국(韓彦國)도 가담하였다. 장순석 등은 거제도로 유배된 의종을 받들고 경주로 나와 웅거하였다. 그러나 장군 이의민(李義旼), 산원(散員) 박존위(朴存威)에게 모두 패하였다.

김보당이 체포된 다음, 문신으로서 이 모의에 가담하지 않은 자가 없다고 말하여, 많은 문신이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무신들이 정부의 요직을 독점하고 정권을 잡아, 무신정권을 확립하였다.

참조항목

무신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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