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경승

두경승

[ 杜景升 ]

요약 고려시대의 무신. 김보당의 난을 평정한 후 반란지구의 민심수습에 진력했고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키자 주변 도읍을 진압한 뒤 조위총을 죽였다.
출생-사망 ? ~ 1197
본관 두릉(杜陵)
활동분야 무신
주요수상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
시대 고려 중기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중시조. 학식은 없어도 무용이 출중하여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으로 뽑혔다가 대정(隊正)으로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명종 초에 이의방(李義方)의 발탁으로 내순검지유(內巡檢指諭)를 거쳐 낭장(郞將)이 되었다. 1173년 김보당(金甫當)의 난을 평정한 후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로 반란지구의 민심수습에 진력하여 장군으로 승진,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가 되었다. 이듬해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로가발(東路加發) 병마부사로 주변 도읍을 진압한 뒤 후군총관(後軍摠管)이 되어 계속 추격, 1176년 서경을 공략하고 조위총을 죽였다.

그 공으로 상장군·어사대지사(御史臺知事)가 되고, 1180년부터 공부상서(工部尙書)·호부상서(戶部尙書)·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참지정사(參知政事)·권병부판사(權兵部判事) 등을 거쳐 1193년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로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겸임, 세인의 지탄을 받았다.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된 뒤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1197년 정권을 잡은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자연도(紫燕島)에 유배되자 울분으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일설에는 재물을 탐낸 가노(家奴)가 독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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