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김도현

[ 金道鉉 ]

요약 한말의 항일 의병장. 영양·안동 지방의 의병을 모으는 등 의병 봉기를 촉구하였다. 영양에 영흥학교를 세워 육영사업에 힘쓰다가 부친이 사망하자 망국을 개탄하는 시를 남기고 투신자살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벽산생가

벽산생가

출생-사망 1852 ~ 1914
본관 김녕
명옥
벽산
별칭 별명 도현
활동분야 항일운동(의병장)
출생지 경북 영양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2)
주요저서 《벽산선생창의 전말》
주요업적 항일운동
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

1852년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났다. 본관 김녕(金寧), 자 명옥(鳴玉), 호 벽산(碧山), 별명 도현(燾鉉)이다. 영양군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서당에서 한학을 익혔으며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다가 매관매직에 실망하여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동학난이 일어나자 점고지회(點考之會)를 조직하여 상청리 동천변에 있는 검각산(劍角山)에 석성을 쌓아 향촌을 방위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분격한 유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을 일으키자 김도현은 1896년 2월 유시연(柳時淵)과 함께 영양·안동(安東) 지방의 의병을 모아 경북 봉화군 청량산(淸凉山)에서 기병(起兵)하였다. 그리고 봉화(奉化)와 영주(榮州)를 점령하여 군수가 바치는 군기(軍器)로 무장하고 안동으로 진군하였으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후 청송(靑松)·의성(義城)·영덕(盈德)·영해(寧海)·강릉(江陵)으로 이동하며 관군과 일본군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였고 방문하는 지역에서 의병의 봉기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당시 거병한 대부분의 의병대는 관군과 일본군의 우세한 전세에 밀려 패퇴하였으며 각 지역의 의병대는 속속 해산되었다. 전세가 의병에게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자 벽산은 1896년 9월 의병을 해산하고 산중에 은거하였고 고종에게 상소문을 올려 나라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하는 등 광무개혁이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에서 이에 반대하는 상소가 이따랐고 벽산은 이듬해 1906년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거병하였다. 하지만 영양군수의 밀고로 거병의 좌절되어 의병을 해산하였고 벽산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다.1907년 고종이 직접 의병 봉기를 촉구하는 밀지를 그에게 내려 분격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벽산은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감시가 심했고 더구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영양에 영흥학교를 세워 육영사업에 힘쓰다가 1914년 부친마저 세상을 뜨자, 망국을 개탄하는 시를 남기고 영해의 관어대(觀魚臺) 앞바다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저서로 《벽산 선생 창의전 말(碧山先生倡義顚末)》이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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