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수
[ 琴蘭秀 ]
- 요약
조선 중기 선조 때의 학자. 제릉참봉, 장례원 사평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좌승지가 추증되었다.
출생-사망 | 1530 ~ 1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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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봉화(奉化) |
자 | 문원 |
호 | 성재·고산주인 |
활동분야 | 학문 |
본관 봉화(奉化). 자 문원(聞遠). 호 성재(惺齊) ·고산주인(孤山主人). 1561년(명종 1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77년(선조 10) 제릉참봉(齊陵參奉)이 되었고, 이어 장례원 사평(掌隷院司評)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고향에 있다가 의병을 일으켰다. 1596년(선조 29)에 성주판관(星州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1599년(선조 32) 봉화현감을 하루 만에 사임하고 귀가했다. 좌승지가 추증되었으며, 예안(禮安)의 동계정사(東溪精舍)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