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기
[ 權得己 ]
- 요약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문신. 예조좌랑을 지냈다. 광해군이 모후를 서궁에 유폐하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고산도찰방을 사임하고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이조참판이 추증되었다.《만회집》이 있다.
출생-사망 | 1570 ~ 1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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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안동(安東) |
자 | 중지(重之) |
호 | 만회(晩悔) |
주요작품 | 《만회집》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안동(安東). 자 중지(重之). 호 만회(晩悔). 예조판서(禮曹判書) 권극례(權克禮)의 아들로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이 되었다.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을 사임하고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이조참판이 추증되고, 대전 서구 탄방동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만회집(晩悔集)》, 《연송잡기(然松雜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