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미사리 유적

하남 미사리 유적

[ Archaeological Site in Misa-ri, Hanam , 河南 渼沙里 遺蹟 ]

요약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에 있는 신석기 ·백제 시대의 유적. 1979년 10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하남 미사리 선사유적

하남 미사리 선사유적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79년 10월 25일
소재지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557번지 외
시대 선사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1979년 10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0년 맨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이래 암사동 유적과 더불어 한강 유역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알려졌으나 발굴조사를 통하여 여러 시기에 걸친 유적이 층위를 달리하면서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유적이 있는 미사리는 한강 중상류의 남북 4㎞, 동서 1.5㎞의 타원형 섬으로, 서쪽 지류에 올림픽 조정경기장을 만들면서 동쪽 본류의 수량이 늘어나자 섬의 동쪽 일부를 잘라 강폭을 넓히는 한강 유역 종합개발사업이 계획되면서 1988년~1993년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의 층위는 각 지점에 따라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크게 신석기시대 층위, 청동기 ·철기 시대 층위, 백제시대 층위로 나누어지며, 각 시기별 층위는 다시 몇 개의 간층으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 유적은 각 시기별 유적의 변천과정이 비교적 명확하고 또한 유구간의 중복관계가 상당히 심한 편이어서 동일 층위 내에서의 선후관계를 밝히기에도 매우 용이하기 때문에 한국 중부 지역 선사시대의 변천상 및 집락의 형성과 소멸 등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살피는 데 표준유적이 되었다. 신석기시대 유구로는 움집터[豎穴住居址] 3기 외에 저장구덩[貯藏穴], 대소형 야외 화덕자리[爐地] 다수 및 방형주구 형태의 미상유구가 1기 검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굴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층까지만 조사가 이루어지고, 그 아래의 신석기시대층은 보존 조치하였기 때문에 상기한 신석기시대 유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조사된 집터[住居址]는 540~450cm의 원형이며 화덕자리는 타원형과 원형으로 자갈돌을 둥글게 쌓은 것, 아무런 시설 없이 땅을 얕게 파고 불을 피운 형태의 것이 대부분이다.

시기는 대략 BC 3500년에서 BC 1000년기 전반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움집터 37기, 저장구덩 34기, 굴립주건물 1동, 책렬유구가 조사되었다. 움집터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계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덧띠새김[刻目突帶]무늬토기 계통은 5기에 불과한데, 양자는 출토된 토기로 보아 상호 이질적인 문화집단의 소산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된 집터의 평면구조는 구멍무늬토기 계통이 주로 장방형이고 덧띠새김무늬 계통은 방형인데, 양자는 중복관계로 보아 덧띠새김무늬 계통이 후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계통은 일본 야요이[彌生]문화의 도작농경 발생기에 처음 나오는 양식과 유사하고 시기적으로도 일치하고 있어 앞으로 양지역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굴립주(窟立柱) 건물은 2칸 ·3칸으로 구멍무늬토기 단계의 것이 1기 조사되었을 뿐이지만 영암 장천리집터에서도 보고된 바가 있다.

한편, 책렬유구(柵列遺溝)는 미사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주거 집락 북쪽의 강안을 따라 분포하고 있어 강한 바람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BC 700년을 전후한 시기에서 BC 3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철기시대 이후의 유구로는 움집터 45기, 저장구덩 100여 기, 굴립주건물 30여 동, 도랑유구 수기가 조사되었다. 움집터는 민무늬토기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방형 계통과 철기문화를 앞세운 신출의 와질토기 집단에 의해 조영된 원형계통으로 대분된다.

양 집터의 선후관계는 일부의 방형계만이 약간 빠른 시기에 속할 뿐, 대부분은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기존의 민무늬토기사회에 철기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시기 집터의 가장 큰 특징은 집터 내부에 보편화된 부뚜막의 축조를 들 수 있는데, 이의 기원은 평면 형태로 보아 중국 동북지방의 장방형 계통에서 찾을 수 있다.

굴립주건물은 1칸 ·3칸, 2칸 ·3칸 이하의 비교적 소형인 것이 대부분으로 중앙부에는 저장시설을 마련한 것도 있어 주거용과 창고용이 혼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특징은 움집터 공간과 굴립주건물 및 저장시설 공간이 분리되어 있음을 들 수 있다. 민무늬토기시대의 집터가 주로 강안을 따라 배치된 자연촌락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점과 비교할 때, 상당히 진일보한 계획적인 촌락구조에 속한다. 시기는 BC 3세기 전후에서 AD 2세기대까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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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미사리 유적 하남시 미사동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 사적 제269호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1962년 처음 발견되었으며 1980년 서울시내 4개 대학의 합동 발굴로 지표면 아래 7개 자연층위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전까지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만 알려졌던 미사리 유적은 발굴조사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백제시대)에 걸친 긴 세월의 유적임이 밝혀졌다. 유적지에서는 각 시대의 돌로 만든 기구와 도구, 당시의 집터, 백제시대 대규모 밭 등이 발굴되었으며 한강하류 유역의 생활터전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