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립주건물

굴립주건물

[ 掘立柱建物 ]

요약 지상보다 높은 위치에 주거면이나 창고시설물을 마련한 건물 형태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확산은 집단내의 경제적인 기반뿐만이 아니라 이를 유지시킨 체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산나이 마루야마 굴립주 건물

산나이 마루야마 굴립주 건물

이러한 굴립주건물이 한국에 언제부터 등장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 〈위지〉 동이전에 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부터 사용하였음이 틀림없다. 실제 발굴조사에서 밝혀진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미사리와 장천리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미사리의 굴립주건물은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6.4×3.9m의 장방형 범위에 2∼3칸을 세운 형태이고, 장천리는 5.5×1.8m의 범위에 1∼3칸 구조로 송국리 단계에 속한다. 그러나 이 시기 굴립주건물의 조사례가 거의 없어 건물의 용도 또는 상부구조를 밝히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본격적 굴립주건물의 축조는 BC 2세기에 접어들어서이다. 이 시기가 되면 터[豎穴住居址]와 굴립주건물의 분리된 공간 점유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굴립주건물이 취락의 중앙에 위치하고 양쪽으로 움집터가 배치되기 시작한다. 건물의 용도 또한 주거용과 창고용으로 구분되며 양자 모두 집단 내의 공유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굴립주건물의 확산은 집단내의 경제적인 기반뿐만이 아니라 이를 유지시킨 체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편, 중국 [雲南省] 오지(奧地)의 민속학적인 조사를 근거로 굴립주건물이 도작농경민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하는 설도 있으나 적인 뒷받침은 전무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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