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

공중전

[ air battle , 空中戰 ]

요약 공중에서 항공기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전투.

공전(空戰)이라고도 한다. 공중전에서 주병(主兵)은 전투기로서, 적기를 격추시켜 제공권을 장악하며, 적의 작전 목적을 저지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최초의 공중전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 벌어졌다. 그때는 권총이나 기병총(騎兵銃)이 사용되었다. 그 후 기관총으로 장비되기 시작했으나, 초기에는 프로펠러의 회전과는 상관없이 장치되었기 때문에 발사 도중 프로펠러에 손상을 가져오기 일쑤였으며, 심지어는 그로 인해 추락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 후 엔진의 회전과 기총의 발사속도를 조정하는 장치가 발명되자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 무렵의 공중전은 1대 1의 싸움으로서 많은 에이스(격추왕)가 나타났다. 독일의 M.리히토펜, M.이멜만, 프랑스의 G.귄느메르, R.퐁크, 영국의 E.매노크, A.볼 등이 특히 유명하며, 그 가운데서도 리히토펜은 80기(機)나 격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3군의 모든 작전이 우선 제공권의 장악전에서 비롯되어, 대규모 전략공격이 연속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치열한 공중전이 많았다. 이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1940년에 있었던 영국본토를 사수한 항공작전과, 42년에 있었던 미 ·일 양국 간의 라바울 항공작전이다.

공중전의 방법
전투기에는 기수(機首) 또는 날개에 2∼8정의 고정기총(固定機銃:최초에는 7.7mm 내외,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는 13∼20mm)이 장비되었으며, 전투기 상호간의 전투에서는, 적기의 후방으로 돌아가 200m 이내의 근거리까지 접근하여 연발사격으로 추락시키는 방법이 취해졌다.

그리하여 전투기는 단좌식(單座式)이 중요시되고, 속력·상승력·선회성(旋回性) 등 민첩한 기동성이 요구되었으며, 공중 선회·공중 선회반전(空中旋回反轉) ·수직선회·실속반전(失速反轉)·상승반전·횡전(橫轉) 등 소위 특수비행의 비법을 다하여 적기의 후방으로 우회하려고 애썼다.

그후 공중전의 규모가 커지고, 편대 공중전이 시작되자, 공중전에서도 전투기의 수효가 작전의 승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폭격기 등에 대한 공격은 방어 포화를 피하기 위하여 수직강하에 의하여 하방(下方)의 사각(死角), 또는 전방에서 공격하게 되었다.

항공기의 고속화와 고고도화(高高度化), 야간행동의 증대는 공중전의 지휘 유도에 전자장치의 이용을 촉구하였다. 영국 본토의 항공전에서 처음으로 실용된 GCI(ground-controlled interception) 방식은 레이더에 의해 지상에서 지휘관제를 하는 요격방식으로 영국이 승리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레이더가 장치된 야간전투기와 전천후전투기도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는 다시 고속 제트 전투기가 나타남으로써 격투전은 거의 사라지고, 공전 미사일(공대공 미사일)이 전투기에 장비되기에 이르렀다. 미사일을 사용한 최초의 공중전은 1956년 가을, 타이완 진먼섬[金門島] 상공에서 있었던 당시 중화민국 공군 F86 전투기가 중국의 공군 미그(MIG) 전투기에 대해 사이드와인더(sidewinder)를 사용한 공중전이었다.

그후 GCI 방식은 더욱 고도로 전자화되어 세이지(SAGE: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와 배지(BADGE:basic air defense ground environment) 시스템까지 발전하였다. 즉, 목표의 발견, 식별에서부터 전투기의 지휘, 유도까지 전자계산기나 데이터통신을 활용한 자동장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최종적인 판단만이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어 가고 있다.

전투기도 전천후전투에 적응하는 전자중장비전투기, 이를테면 F4와 같은 것들이 중용되고, 스패로(Sparrow) 등의 미사일도 점차 고성능·원거리화되어 가고 있으나, 베트남전쟁에서는 목표를 발견하고 식별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근거리 격투전도 불가피하게 되었기 때문에, 또다시 대구경의 고발사속도 기총이 장비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