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의 연혁

공군의 연혁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이래 세계의 열강(列强)들은 기구 및 비행선과 함께 비행기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군용항공기의 가치가 최초로 확인된 것은 때였다. 초기에는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그 임무는 정찰에 한정되었으나, 전쟁의 진전에 따라 항공기용 기총과 폭탄이 만들어져, 공중전과 대공사격 등이 하늘을 무대로 전개되어, 이들 전투가 종합적으로 항공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눈부신 활약을 한 것은 독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미국의 육군기, 영국의 해군기 및 독일의 비행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동 ·서 두 전선에서 항공부대가 주로 지상과 해상 병력의 보조병력으로 사용되었을 뿐, 전세를 크게 좌우할 만큼 유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군의 정찰과 공격을 위해 제공권이 중요시되었다는 점과, 독일 비행선이 런던 폭격을 반복함으로써 지상과 해상작전으로부터 독립된 항공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정세를 보고 영국은 대전 말기인 1918년 다른 열국(列國)에 앞서 공군을 창설하였다. 이 무렵에 이탈리아의 육군 소장 G.두에와 미국의 육군 준장 W.E.미첼 등은, 앞으로 전쟁은 주로 하늘의 싸움이 될 것이고 전략 폭격이 전쟁의 승패를 가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공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1920년에 캐나다가, 1921년에는 이탈리아가 공군을 독립시켰을 뿐이며, 1934년에는 프랑스가 공군을 독립시켰으나 그 최고 수뇌가 육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육군 항공부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항공 군비가 금지된 독일은 비밀리에 준비를 진행시켜, 1935년 히틀러는 공군을 창설하였으며, 1939년에는 에스파냐 공군이 독립하였다.

에서는 앞서 말한 독립 공군을 가지고 있는 나라와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등 공군을 가지지 않은 나라가 서로 혼전을 벌였다. 초기의 독일군에 의한 전격작전, 독일 공군의 폭격을 저지시킨 영국 공군의 본토방공작전, 독일 공군으로부터 제공권을 탈환한 소련의 방공작전, 주요 산업지구 공격에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 미국과 영국 폭격대의 파괴작전 등은 독립된 항공작전으로서 전쟁을 지배하는 힘을 실증해 보였다.

특히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을 투하한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29, 독일의 무인폭격기(無人爆擊機) V-1, V-2, 영국과 독일의 제트기 등은 항공전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공군을 가지지 않았던 나라도 대전이 끝나자 공군을 독립시켰거나 그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었다.

미국은 1947년, 육군항공부대를 모체로 공군을 독립시켰다. 대전이 끝난 후 수년 동안은 원자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공군의 전략 폭격부대가 세계적인 대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영국에서 원자탄이 개발되고, 한편으로 6 ·25전쟁이 일어나자 공군의 위력만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상당한 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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