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궁

계동궁

[ 桂洞宮 ]

요약 조선 고종(高宗) 때의 대신 이재원(李載元)의 저택.
계동궁터

계동궁터

대원군(大院君) 조카의 저택이고 한성부 북부 관광방(觀光坊) 계동에 있었으므로 계동궁이라 하였다. 1884년(고종 21) 12월,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등의 강요로 창덕궁(昌德宮)에서 경우궁(景祐宮)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그곳에서 근신(近臣)들이 개화당(開化黨)에 의해 참살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고종은 창덕궁으로 환궁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경우궁보다 협소한 계동궁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개화당은 그들의 배후세력인 일본과 적대 관계에 있던 청(淸)나라의 군대가 공격해 오더라도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계동궁에서 신정권의 기초를 가다듬은 후 창덕궁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고종은 그 후 곧 환궁하였지만 창덕궁에서도 가장 협소한 관물헌(觀物軒)에 머물렀다.

역참조항목

고종, 대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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