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강의

경연강의

[ 經筵講義 ]

요약 경연에서 강론한 내용을 적은 책.
구분 필사본
저자 김우옹
시대 조선시대
소장 규장각

필사본이며 규장각도서이다. 김우옹이 1573년(선조 6)부터 1595년(선조 28)까지 군신과 더불어 경서를 진강(進講)하거나, 제반사항에 대해 왕과 문답한 내용을 적은 책이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지만 동일한 내용이 《동강선생문집》 권14∼17에 실려 있어, 이것이 동강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집에는 1594년분이 더 실려 있는데, 이 책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고, 1595년분은 양자 모두 3월 27일로 끝나고 있는데, 이 책에는 끝부분이 빠져 있다. 1573년부터 1595년까지이긴 하나 매년분이 모두 실린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수록된 기간도 1573년 9∼12월, 1574년 1년분, 1576년 2월, 1577년 5월, 1579년 3∼6월, 1581년 1∼6월, 1585년 2∼3월이다. 즉 경연에 관한 모든 기록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김우옹에 관련된 부분만 초록되어 있다. 진강된 것은 상서(尙書)·춘추(春秋) 등 경서가 주이지만 강이 끝난 뒤의 문답은 반드시 경의에 관한 것만이 아니고 정치 일반에 관한 것도 거론된다. 저자가 34세 때 홍문관정자로서 경연관이 되어서부터 대사헌(大司憲)에 이를 때까지 총 43회에 걸쳐 강론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1573∼1577년 총 21회에 걸쳐 《서경(書經)》을 강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내용은 《서경》의 ‘탕서(湯誓)’, ‘태갑(太甲)’에서 ‘소고(召誥)’, ‘군아(君牙)’편까지이며, 제왕의 치도와 경제에 관한 것이다. 특히 군왕은 하늘이 백성을 위하여 세운 것임을 명심하여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하도록 진언하였다. 1579년과 1581년에는 총 11회에 걸쳐 《춘추(春秋)》를, 1585년에는 3회에 걸쳐 《강목(綱目)》을 강론하였다. 1594년에는 1회, 1595년에는 2회 《주역(周易)》을 강론하였다.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분별을 주장하는 한편, 특히 경(經)과 의(義)를 강조하였다.

이 책에는 김우옹 외에도 이이(李珥)·유희춘(柳希春) 등 당대의 거물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다. 김우옹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죽은 뒤 오산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 김우옹 개인에 관련된 부분만 뽑은 것이어서 불완전하나 당시 경연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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