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개원

[ 改元 ]

요약 군주국가(君主國家)에서 연호를 바꾸는 일.

연호는 BC 140년 한(漢)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원(元)나라에 이르기까지 국가에 상서로운 일 또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개원이 있었으나, 명(明)나라 이후 일세 일원(一世一元)의 원칙이 세워졌다. 신라 ·발해 ·일본 등도 중국을 본떠 연호를 제정하였는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연호를 사용한 것은 536년(법흥왕 23)으로 한무제(漢武帝)의 연호 건원(建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 후 진흥왕 때 비로소 독자적인 연호 개국(開國:551∼567)을 사용하다가 대창(大昌:568∼571) ·홍제(鴻濟:572∼583)라고 개원하였다. 이어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때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649년(진덕여왕 3) 당(唐)나라 태종이 신라에서 연호를 따로 쓰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여 다음해부터 당나라의 연호 영휘(永徽)를 사용하였다.

822년(헌덕왕 14)에는 김헌창(金憲昌)이 장안국(長安國)을 세우고 경원(慶元)이라 하였으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영락(永樂)이라 하였다. 발해국의 무왕 이후 역대 왕도 연호를 사용하였다. 궁예의 태봉국(泰封國)도 처음부터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무태(武泰:904∼905) ·성책(聖冊:905∼910) ·수덕만세(水德萬歲:911∼913) ·정개(政開:914∼917) 등 네 번이나 개원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왕건이 등극하여 천수(天授)라 개원, 자주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그 후 광종 때는 광덕(光德)이라고 개원하였다가 한때 준풍(峻豊)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명(明)나라의 제후국을 자인하여 자주적인 연호를 쓰지 않았으나, 고종 말기에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썼고, 이듬해 대한제국 황제가 되면서 광무(光武)라고 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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