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
[ 姜紳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정여립의 난을 평정하여 진흥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 때는 함경도순찰사로 활약하였다. 정유재란 때 명을 도와 왜를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출생-사망 | 1543 ~ 1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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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진주 |
자 | 면경 |
호 | 동고 |
시호 | 의간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수상 | 평난공신, 진흥군 |
본관 진주(晋州). 자 원경(遠卿). 호 동고(東皐). 시호 의간(毅簡). 1567년(명종 22) 진사가 되고, 1577년(선조 10)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이 모반하여 난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여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으로 진흥군(晋興君)에 봉해졌다. 1592년 승지를 거쳐, 같은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순찰사(巡察使)로 활약하였다. 이어 병조참판에 오르고, 1596년 서북면순검사(西北面巡檢使)로 나갔으며,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明)나라 군사를 도와 왜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난이 끝난 후 부제학을 거쳐 병조 ·이조 판서를 지내고, 중추부판사에 이르렀다. 1609년 우참찬, 다음해에 좌참찬을 지낸 후 기로소에 들어갔다. 저서에 《진흥군일기(晋興君日記)》가 있다.